사단장님. 사단장님. 저도 이제 구순이 넘은 노병이지만 앞으로 못뵌다 생각하니 섭섭하면서도 슬퍼 눈물이 자꾸 흘러내립니다. 몇칠 전 TV를 보다 사단장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립습니다.
1950년 8월 1일부터 9월24일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가장 치열했던 전투인 다부동 전투는 백선엽 사단장님이 있었기에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결사적으로 한 사람이 남더라도 전쟁을 치르자 했던 그 시절이 눈 앞에 선합니다. 적군과 욕을 하며 치고 받고 싸우던 시절에 그는 우리의 영웅이었습니다. 50년 7월 21일 군번도 받지 않은 채 대구 남산 국민학교에서 단 2주간 교육을 받고 전장에 투입된 저에겐 사단장님은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큰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주먹밥 보급이 나오면 소금물에 담궜다가 간을 빼 맞춰 먹으며 전쟁을 치렀습니다. 멸치 한마리를 주먹밥에 얹어 먹었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보급품은 실탄과 주먹밥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절 전장에서 사단장님은 부하들을 참 사랑하고 아껴주셨습니다. 사단장님은 지프타고 가다 병사가 보이면 내려 다가온 뒤 꽁초 담배라도 불을 붙여 한 명 한 명 눈을 바라보며 한 모금씩 하라고 입에 물려주던 그런 정많은 사람이셨습니다. 그때 사단장님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전장에서 장군님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따스했습니다.

1사단 12연대 1대대 1중대 1소대 1분대였던 저는 전쟁 중 밤만되면 수많은 동료 군인들을 잃었습니다. 시체는 산을 쌓듯 넘쳐 났고 피 냄새는 코를 찔렀습니다. 젊은 시절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 사단장님의 지휘 아래에 있었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단장님의 통찰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도 이렇게 구순의 노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단장님을 뵐 때마다 참 반가웠습니다.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사단장님은 우리가 전쟁을 치렀던 다부동 전장을 꼭 찾아주셨습니다. 6.25 행사가 열리면 사단장님께서는 잊지 않고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지난해 오래 사시라고 인사드렸지만 몇칠 전 사단장님이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사단장님과의 영원한 이별이 슬퍼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연세가 100세가 되셨지만 지난해까지 행사에 참여해주셨던 사단장님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저도 무릎 연골이 성하지 못해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어디가질 못하는 노인이 됐습니다. 몸이 성치 못하다보니 비가 오면 홀로 밖에 다니기 힘든 그런 상황입니다. 이런 몸을 이끌고서라도 대전현충원 묘지에는 꼭 가보려합니다. 가장 좋은 꽃을 해서 가겠습니다. 사단장님.
빈소라도 찾아뵙지 못해 너무 섭섭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편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오는 걸 보니 사단장님이 떠나시는걸 하늘도 슬퍼하나 봅니다. 보고싶은 우리 사단장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백선엽 사단장님의 부하 권병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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