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를 보고 한바탕 웃을 수 있다면

입력 2020-07-15 12:39:33

MRI 사진을 그대로 써 파격적인 병원 광고가 탄생했다. 진지한 분위기에 엄지를 내미니 그 앙상한 뼈가 환자들을 웃기는데 성공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MRI 사진을 그대로 써 파격적인 병원 광고가 탄생했다. 진지한 분위기에 엄지를 내미니 그 앙상한 뼈가 환자들을 웃기는데 성공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병원 광고는 매우 보수적이다. 일반적인 병원 광고를 떠올려보자. 우선 흰 가운을 입고 팔짱을 끼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점잖은 병원의 경우다. 여기서 조금 더 파격적인 병원은 엄지를 내세운다. 카메라를 보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 의사들의 포즈로 광고를 내보낸다.

아니면 스포츠 스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광고로 쓰기도 한다. 엄지를 올리거나 스포츠 스타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병원 광고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대구의 한 병원이 이 예상을 뒤집는 광고를 만들었다. 바로 스포츠 스타와 함께 엄지를 치켜드는 광고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지만 여하튼 병원 광고는 그래왔다.

병원 광고가 별로인 또 다른 이유로 의료 심의가 있다. 처음에 의료 심의를 받을 때는 황당 그 자체였다. 창작의 요소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라 워딩에 예민한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워딩의 느낌을 넘어 글씨 크기나 색깔에 관한 관여는 너무한다 싶었다. 커야 될 글씨가 있고 작게 써야할 글씨가 있다는 건 지나침 참견이다. 또 한 가지의 불만은 심의의 주관성이다. 의료심의에서 지나친 창작적 요소는 배제된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문제는 척추, 정답은 척척' 이라는 카피를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후에 이런 의료 심의 결과나 날아왔다. "왜 당신의 병원이 정답이냐. 나머지 병원이 오답인 듯한 느낌이니 광고를 내리시오" 속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광고를 내려야 했다.

그 화가 식기 전에 새로운 병원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왔다. 한 영상의학과 건강검진센터였다. 사실 영상의학과라는 분야는 꽤 어렵다. 성형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는 매우 대중적인 이미지다.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영상의학과는 다르다. 어렵고 설명을 해줘도 어르신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MRI, CT라고 하면 어렴풋이 이해하시지만 그런 영어 단어조차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나는 의료 심의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쉽게 표현해야하는 숙제를 받았다.

청개구리 심리가 발동했다. 어설프게 의료 심의에 맞추고 싶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것이 싫었다. 오히려 반대로 '이게 어떻게 통과돼?' 라는 생각이 들 만한 이미지를 찾자고 생각했다. 어줍지 않게 피해가는 워딩을 쓰면 또 반려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화끈한 이미지로 가면 심의위원들도 어리둥절해하면 통과시켜줄 것 같았다. 그들도 사람이니 한번 웃겨주면 '이게 되나?' 하는 생각으로 승인해줄 것 같았다.

그렇게 가져 온 이미지가 실제 MRI 사진이었다. 어설프게 피해가지 말고 정면으로 들이대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작업을 맡은 우리 디자이너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보수적인 의료심의에 통과될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아, 소장님이 이제 막나가는구나'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료 심의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규제에 굴하지 않고 이 이미지로 병원 PT 자리에 갔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의사들이야 영상의학과라 그러면 잘 알겠지요.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대개 어려워합니다. 그냥 보여줘야 합니다. 영상의학과가 뭐하는 곳인지 그냥 보면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이디어 발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밀어붙였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으니 병원에서 이 안을 선택하길 바랐다. 당연히 준비한 3가지 안 중에 광고주는 이 안을 선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원장님의 만족스러운 표정 너머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의료 심의 때문이었다. 나는 의료 심의를 꼭 받아내겠다고 장담하고 나왔지만 사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무조건 심의를 받자라는 식이었다. 이런 아이디어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일주일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직원을 시켜 매시간 심의 여부를 확인했다. 서울 출장을 마치고 내려오는 SRT 기차 안이었다. 직원에게 전화가 왔는데 심의 번호가 떴다는 소식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오히려 직원에게 반문했다. "왜?"라고 말이다. 그때 직원이 한 말이 가관이다. "심의 위원들이...우리를...포기한게 아닐까요? 얘들 원래 이상한 애들이야...라고 말이죠" 우리가 똥이 된 기분이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존재 말이다.

마치 고려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심의를 기다렸다. 비록, 고려대 근처에도 가보진 못했지만 아마 분명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비유가 적당할 것이다. 영상의학과 원장님은 사실 30대 후반의 젊은 원장님이셨다. 큰마음 먹고 개원하는 병원일텐데 심의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바로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원장님은 서울대 합격자 발표를 들은 것처럼 기뻐하셨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광고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웃기고 싶었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얼마나 각박한 세상에서 사는지. 그리고 영상의학과 광고를 보는 사람들은 더 부정적인 상황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상황일수록 한바탕 웃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 영상의학과의 동영상 광고에는 사실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 MRI 속 사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것이 좀 웃기다. 멈춰져있는 MRI 이미지를 움직이게 구현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MRI 속 걷는 사람의 이미지가 마치 유령 같았다. 유령이 지나가면 등 뒤에서 카피가 나오는 아이디어가 전부였다.

멈춰진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느라 애먹었던 광고. 억지로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그런 어색함이 왠지 웃겼고 그런 유머가 환자들에게 통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멈춰진 이미지를 움직이게 하느라 애먹었던 광고. 억지로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그런 어색함이 왠지 웃겼고 그런 유머가 환자들에게 통했다. ㈜빅아이디어연구소

동시에 병원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병원의 개업 빨(?)일수도 있지만 웃긴 광고의 덕을 살짝 밀어 넣고 싶다. 개원하는 경우, 초반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그 병원의 팔자가 되어 버린다. 사람의 인식은 웬만해선 첫인상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기억해보라. 첫 방문 때 친절한 브랜드를 다시 찾은 기억이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첫인상은 강렬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빨리 검사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사람들은 달아나버린다. 하지만 한번쯤 웃겨주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마음을 연다. 건강 문제가 아니어도 인상을 쓰며 살아가는 우리이다. 광고에서조차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웃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이 있다. 광고 뿐 아니라 모든 창작가가 기억해야할 말이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일은 그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같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평생동안 (80년 기준) 화내는 시간이 5년이라고 한다. 일하는 시간은 23년이며 식사시간은 7년이라고 한다. 반면, 평생 동안 웃는 시간은 고작 89일이라고 한다. 그만큼 웃을 일이 없는 요즘을 우리는 버티고 있다.

웃음이 최고의 광고이자 마케팅이다. 소비자를 웃겨라. 즐겁게 하라. 웃기는 사람에게 마음에 문을 닫는 사람은 없다. 소비자 역시 똑같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