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
어린왕자는 말했다. 광고하시는 분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설득한다. 상업 광고를 만들어 지갑 속 지폐를 꺼낸다. 공익 광고를 만들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돈을 꺼내든 1회용품을 쓰지 않든 설득이 우선이다. 설득이 없다면 성공한 광고도 없다.
대구광역시 가정위탁지원센터의 광고 의뢰를 받았다. 위탁이라는 말이 생소했다. '가정을 위탁한다고?' 알고 보니 부모의 돌봄을 못 받는 아이들을 대신 돌봐주는 일이었다. 즉, 일정기간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다. 광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부모가 필요한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 준다니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가.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를 내 자식처럼 돌본다니 말이다.
나 자신이 아이가 되어 보았다. 얼마나 부모가 그리울까? 부모의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누구에게 그 애달픈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 마음이 묻어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아이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을 말이다. 그곳은 바로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이라면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도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써내려간 글이다. 별다른 수사법보다 이렇게 담담한 글이 더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 엄마를 그려보았다. 잘생기고 예쁘게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가장 멋진 부모님의 모습을 그렸다.

드디어 아이디어 발표일. 광고주는 아니나 다를까 이 시안을 선택했다. 그림일기가 아이의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름 뿌듯했다. 우리 팀의 생각이 광고주와 통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렇게 시안을 넘겨드리고 일을 마무리 되는 듯했다.
며칠 뒤 센터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시안의 수정 사항에 관련한 전화였다. 광고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정말 별 것 아닌 수정이었는데 그것이 나를 엄청나게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용은 이랬다. 광고에 아빠와 엄마가 떨어져 있으니 편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즉, 이 광고를 보고 편부모 아래의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봐 걱정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보통 광고주를 만나보면 느낌이 있다. 기업에 따라 영혼이 다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광고주의 영혼은 어둡다. 반면, 이런 공익적인 일을 하는 분을 만나면 영혼의 깊이 다르다. 그래서 더 도와드리고 싶다. 이 광고를 보고 혹시나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전화하는 모습이 내겐 큰 감동이었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나는 왜 그 아이의 마음을 미리 챙기지 못했을까? 나 자신이 아이가 되어 봤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도 지극히 세일즈의 관점에서 접근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역시 위탁지원센터에 계시는 분들은 영혼이 달랐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광고는 그 따뜻한 마음을 반영했다. 카피는 '나에게도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로 수정되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성장한다고 그랬던가? 광고인이 그렇다. 지구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광고인의 가장 큰 특권이다. 센터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영혼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광고인은 진심으로 투명한 영혼을 가져야 한다고. 정말 투명해야 광고주의 영혼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 그들과 같은 영혼을 가져야 그 마음을 잘 알릴 수 있다고 말이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댓글 많은 뉴스
'우리 꿈 빼앗겼다' 입시비리 조국 사면에 수험생·학부모·2030 분노 표출
'내편은 묻지마 사면, 니편은 묻지마 구속(?)'…정권 바뀐 씁쓸한 현실
김건희 구속·국힘 당사 압수수색…무자비한 특검 앞 무기력 野
유승준 "사면? 원치 않아…한국서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다"
김문수, 당사서 '무기한 농성' 돌입…"무도한 압수수색 규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