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갤러리 H 큐레이터
얼마 전 전시장에 찾아온 관람객들이 물었다. "이번 전시는 캡션(명제표)이 없네요?"
그들은 작품의 사이즈나 재료, 제작연도 보다 '제목'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듯했다. '제목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이름이 있듯 작품에도 '제목'이 있고, 우리에게 신분증이 있듯 작품에는 '명제표'가 있다. 주로 작품의 제목, 사이즈, 재료, 제작연도가 적혀있는데, 바로 이 명제표를 통해 관람자는 작품의 세부 정보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제목'에 대한 요구는 언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을까? 한 연구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근대적 형태의 전시회가 자리를 잡고 미술 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이다. 다른 작품과의 구별을 위해 붙여진 '제목'은 미술사적인 해석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모든 작품에 제목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보자면, 제목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그리고 작품과 제목의 불일치이다.
마르셀 뒤샹의 'L.H.O.O.Q'(1919)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Mona Lisa'(1503~1506)를 재해석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독특하게도 화면 하단에 'L.H.O.O.Q'라는 제목을 적어놓았는데, 프랑스어로 발음하면 '그 여자의 엉덩이는 뜨겁다'는 말이 된다. 바로 이 제목을 통해 감상자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무제'와 같이 제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감상자는 제작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순 없겠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화면에 파이프를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했다. 작품과 제목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제목'의 유무에 따라 감상자는 작품의 제작 의도 파악, 미술사적인 접근, 사고의 전환 등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같은 작품이라도 '제목'에 따라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뭉크의 '절규'가 '환희'였다면, 그에 따라 감상자의 생각은 물론 미술사적으로도 해석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시장에서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아이를 만났던 날이다. 그 아이는 식물 형태의 그림을 보고 "바나나 같아요"라고 했지만 작품의 제목은 '정원'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정원'이 아닌 '바나나'였다면, 우리는 바나나의 형태가 작가에 의해 재해석 됐다고 생각했을 거다.
오늘도 전시장을 찾은 일부 사람들은 '명제표'의 행방을 묻거나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혀 그것을 바라본다. 우리는 작품의 '제목'에 의존하고 있진 않을까? 물론 '제목'은 18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작품과의 구별 혹은 미술사적인 해석 등을 위해 분명 필요하다. 그렇지만 작품을 감상할 때 제목이나 명제표에 의존하기보다는, 제목을 맞추어본다던가 또 다른 제목을 붙여보는 등 폭넓고 재미있게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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