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영상·설치가 리우

입력 2020-06-21 06:30:00

경북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조각 및 영상·설치가인 작가 리우 씨가 자신의 작품을 손보고 있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조각 및 영상·설치가인 작가 리우 씨가 자신의 작품을 손보고 있다.

리우 작
리우 작 '은해지몽 銀海之夢'

조각을 전공한 작가 리우(54)는 미디어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 아티스트로서 본연의 창작 예술만 작업하는 게 아니라 3권의 책을 쓴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2006년 우리 시대의 미학 사이보그, 동양, 디지털 등을 주제로 한 자신의 조각 과정과 시대성의 의미를 적은 '작업일지', 2010년 또 다른 리우의 작업 이야기를 묶은 'The Empty Digital Body'를 비롯해 단편소설집 'RATAVA'를 펴냈다. 'RATAVA'는 AVATAR를 거꾸로 표기한 것으로 신을 꿈꾸는 인간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향후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미래신화와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작품의 형상화를 위한 단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 한적한 시골마을 한 켠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평면과 입체 및 영상 작업을 위한 별도의 공간으로 나눠져 있으며 작가가 2003년부터 둥지를 튼 곳이다.

"처음엔 집안에서 미술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고 고2때까지는 일반대학을 목표로 공부했으나 고3때부터 정말 미술을 하고 싶어 밤새도록 그림에만 몰두했었죠."

안동이 고향인 리우는 경북대 미술대학(84학번)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려 했으나 대학 2학년 때 전공을 정하면서 조소과를 선택했다. 이유는 회화적 단면에 대한 표현보다 입체적 표현이 가능한 조각에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시절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과 이후 매일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이어 1995년 서울 윤갤러리에서 열린 청년작가 초대전을 통해 첫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 리우는 쇠를 소재로 하거나 자동차 부품을 이용한 기계적인 인체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을 출품했다.

"제 초기작들은 대개 인간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해 인체의 입체성을 구현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경향은 2008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작가의 나이가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 리우는 이때를 일컬어 조각가로서 화두가 바뀌게 된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 새로운 창작의 화두는 '테크놀로지와 디지털'이었다.

이에 따라 리우는 작품의 원형은 여전히 인체를 근간으로 하지만 재료는 컴퓨터 부품만을 쓰고 여기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더해 영상작업을 첨부함으로써 '조각+영상'이라는 예술장르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은 지금까지 그가 최고 걸작품으로 여기는 '코스모스-색'이라는 높이 2m의 작품의 탄생을 가져오게 된다.

'코스모스-색'은 컴퓨터 부품으로 인체모형을 만들고 12개의 모니터로 천수관음상의 손을 묘사한 디지털 천수관음상의 재현으로 2009년 '제4회 포스코 Steel Art Award'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천수관음의 12개의 손이자 모니터는 다름 아닌 '세상을 비추는 거울'을 상징한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작품성향은 현재도 영상과 설치 및 평면을 넘나들면서 더욱 확장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작품마다 스토리텔링식의 짧은 이야깃거리를 덧붙여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최근엔 중국 고전 '산해경'에 나오는 그림들을 작가적 해석을 덧붙여 다양한 예술장르로 구현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이들 소품들은 영상 속에서 모여 캐릭터로 변신해 행진을 하거나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함으로써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는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다.

"산해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 지리서입니다. 기원전 3,4세경 쓰여진 이 책에는 기상천외한 사물과 인간, 신들에 대한 기록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죠. 인문학과 테크놀로지로 동시대 문화적 지형도를 그려보고자 하는 제게 산해경은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주기에 충분합니다."

리우는 산해경을 주 텍스트로 현재 미래신화를 직접 쓰고 있다. 짧은 소설형식이나 우화형식을 빌어 입체와 영상, 조각과 평면 등 미술 전반에 걸친 장르로 재현해 내고 싶은 것이 작가의 포부다. 부연하면 과학기술에 의한 인간성의 상실과 시대상황에 대한 작가적 관심이 산해경을 발판삼아 더욱 확장되면서 그 궁극의 지향점은 신화의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40대 중반에 작품을 하면서 철 조각을 오래 만지다 보니 어깨 근육을 다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조각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경제적 어려움도 겹쳐 힘든 적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잘 되겠지'하는 희망과 내가 현재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창작을 위한 충전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리우의 본명은 본래 이장우이다. 예명을 쓰는 이유는 지역 예술가 중 동명이인 많고 또 2008년 일본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가했을 때 외국작가들이 자신을 부를 때 '이장우'라고 발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부르기 쉬운 '리우'로 바꿔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는 올 1월부터 '대구문화'에 기획연재물 '산해경 읽기'를 매달 기고하고 있으며 예술가로서 인생 30여년을 살면서 개인전 21회, 그룹전 300여회를 가졌다.

그가 제작한 최대 작품은 높이 3m 40cm의 '가야시대 무사'이며 최소 작품은 넓이 21cm 높이 21cm의 혼돈의 신 '제강'이다. 제강은 산해경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이 뿐 아니라 현재 대구 중구 방천시장 입구에 있는 일주문 형식의 조형물도 그의 작품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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