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스탈린이 죽자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작됐다. 30년 넘게 이어진 폭압 통치와 정상을 벗어난 스탈린의 행적이 낱낱이 고발된 것이다. 이른바 '스탈린 격하운동' '탈스탈린화'로 불리는 이 움직임은 1956년 소련 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 당시 니키타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연설로 정점에 달했다.
이후 소련은 스탈린주의를 기치로한 국가 정책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묵은 때를 벗기 시작했다. 방부처리돼 레닌묘에 나란히 안치된 스탈린의 시신은 1961년 크렘린궁 뜰로 옮겨졌고 그의 조각상과 기념물도 모두 철거됐는데 소련권 공산국가 전체에 적용된 의무 사항이었다.
소련과 동유럽, 중앙아시아 여러 공산국가가 채택한 '스탈린' 관련 지명이 거의 사라진 것도 탈스탈린화의 단면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스탈린그라드는 볼고그라드, 우크라이나의 스탈리노는 도네츠크로 바뀌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스탈리나바드는 32년 만에 옛 이름인 두샨베로 되돌아갔다.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주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주의자에 대한 격하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흑인 차별의 불씨를 지핀 미국과 유럽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격하운동이 함께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예제를 찬성한 미국 남부연합의 로버트 리 장군을 위시해 아메리카 대륙 발견자이자 약탈자로 평가되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분노한 시위대의 밧줄에 걸려 넘어졌다. 또 '콩고의 학살자'로 불리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 영국령 남아프리카 제국의 창설자인 정치가 세실 로즈 총독, 처칠 영국 총리의 동상도 표적이다. 인종차별 영화로 지목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격하운동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런 격하운동은 과거 인물들이 남긴 역사적 유산을 사실에 기반해 재평가함으로써 그 책임을 되묻는다는 점에서 지체된 정의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강하다. 청산하지 않은 과거사는 늘 대립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재평가를 통한 엄격한 해석과 사회적 합의가 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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