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똥밭…" 진중권-靑 비서관, 랩배틀 뺨치는 '시' 디스전?

입력 2020-06-11 15:18:08 수정 2020-06-11 15:37:52

진중권, 文대통령 연설 지적 "고민 느껴지지 않는 연설"
靑 연설비서관, 11일 진중권 저격 "마음 속 꽃 꺾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온국민공부방 제1강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온국민공부방 제1강 '우리 시대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맡고 있는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11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시'로 저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빈 꽃밭(부제: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시를 올려, 연일 여권을 향해 날을 세우는 진 전 교수를 타락한 진보 지식인에 빗댔다.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 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 숭고를 향해 걷는 길에 당신은 결국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꽃을 잃고 우리는 울지 않는다." 세간에서는 진 전 교수를 아이에 빗대 비판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진 전 교수는 즉각 '답시'로 응수했다. 제목은 '빈 똥밭'이고, 부제는 '신동호의 빈 꽃밭을 기리며'다.

"같이 똥 쌀 줄 알았던 아이가 똥을 치우니 그가 운다, 몹쓸 공부여 잘 가거라며 (…) 청결을 향해 걷는 길에 아이는 결국 청소하다가 지쳐 주저 앉았지만 똥을 잃고도, 파리들은 울지 않는다. 아직 남은 똥 많다며 울지 않는다."

신 비서관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까지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맡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을 때부터 호흡을 맞춰왔다. 그는 강원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4년 '오래된 이야기'로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이다.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에 답시를 게재하기 전 "예의상 답시를 써 드려야겠다"며 말했다. "저도 한때 시인이 되려고 했었죠. 직접 쓰기도 했는데, 아니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시의 제목만 듣고 다들 웃는 바람에 시인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두 인사의 '시' 디스전은 공교롭게도 진 전 교수가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주최로 열린 세미나의 강연자로 나서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판한 다음날 이뤄졌다. 진 전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 연설문을 보는데 이분은 정말 참 많은 고민을 했다는 걸 느끼는데 문 대통령을 보면 그게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두 시의 전문.

◆빈 꽃밭

- 기형도의 빈집을 기리며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

꽃을 잃고, 나는 운다

문자향이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아

도자기 하나를 위해 가마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꽃을 피워야할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

즐거움(樂)에 풀(艸)을 붙여 약(藥)을 만든

가엾은 내 사랑 꽃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우리들아

통념을 깨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부조화도, 때론 추한 것도 우리들의 것이었다

숭고를 향해 걷는 길에 당신은

결국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지만

꽃을 잃고, 우리는 울지 않는다.

-신동호

◆빈 똥밭

-신동호의 빈꽃밭을 기리며

어느날 아이가 똥을 치우자

일군의 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아이는 더 많은 똥을 치웠고

급기야 그들 마음 속의 똥을 치워버리고 말았다.

똥을 잃은 그가 운다

똥냄새여 안녕,

그림은 그림일 뿐, 너를 위해 비워둔 여백들이여

출세 하나를 위해 기와집으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같이 쌀 줄 알았던 아이가 똥을 치우니

그가 운다, 몹쓸 공부는 잘 가라며

쌀(米)을 바꿔(異) 똥(糞)을 만든

가엾은 네 사랑 똥밭 서성이고

울고 웃다가, 웃다가 울고 마는 파리들아

똥냄새 나는 곳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추한 똥도, 때론 설사 똥도 그들의 것이었다

청결을 향해 걷는 길에 아이는

결국 청소하다가 지쳐 주저앉았지만

똥을 잃고도, 파리들은 울지 않는다.

똥 쌀 놈은 많다며 울지 않는다.

아이는 문득 기형도가 불쌍해졌다.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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