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멸의 인류사/ 시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경덕 옮김/ 부키 펴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이는 인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태어나면서 생존에 필요한 능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하는 종(種)은 인간뿐이다. 이렇듯 유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신간 '절멸의 인류사'를 집필한 분자고생물학자 사라시나 이사오는 인류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유약함에서 찾는다. 어딘가 인과관계가 한참 잘못된 듯 보이지만 저자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접근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보인다.
◆약한 것이 살아남는다
진화에 대해 생각할 때 흔히들 뛰어난 것이 이기고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약한 것이 살아남는다. 이 모순적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생존을 위한 지난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는 무기를 버려서, 털이 없어서, 신체적으로 불리해서, 가난해서 살아남았다.
인류의 경쟁 상대였던 대형 유인원은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어서 암컷이나 먹을 것을 두고 서로 다툴 때 무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인류의 송곳니는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했으며, 이는 인류가 송곳니를 사용하지 않게 된 탓이다. 인류는 일부일처 문화를 정착시켜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싸울 일을 만들지 않았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무기 대신 평화를 택한 결과다.
체온 유지와 피부 보호에 중요한 체모가 인류에게서 사라진 점도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체모가 많으면 땀이 쉽게 증발하지 않아 체온을 낮출 수 없어 오랫동안 걷거나 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직립 이족 보행을 한 인류는 멀리 이동할 수 있었기에 먹을 것을 더 많이 구할 수 있었고, 경쟁자보다 먼저 먹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골격이 크고 단단한 체격을 갖고 있었지만 멸종되고 말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힘은 약했지만 행동 범위가 넓었고, 사냥 기술도 더 뛰어났다. 또한 네안데르탈인보다 기초 대사량이 20% 적었고 더 많은 자식을 낳았다. 몸이 가벼운 호모 사피엔스는 싸우기도 전에 멀찍이 달아났으며 사냥감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네안데르탈인의 생활 영역을 줄여 나갔다.
19세기 지브롤터의 생활 환경은 매우 나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더러운 물을 마셨고 사망률은 부자들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심각한 가뭄이 들자 상황이 역전됐다. 항상 깨끗한 물만 마셨던 부자들은 물이 부족해 더러운 물을 마실 처지가 되자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러운 물은 이미 일상이 된 터라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류 진화의 최신 이론
저자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과학적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인류 진화의 핵심을 설명한다. 인류 진화 과정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면서도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적절한 비유와 간결한 문장, 삽화를 통해 상당히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700만년 전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인류와 침팬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침팬지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인류는 혁신을 거듭하며 다양한 인류종으로 뻗어나갔다. 인류 계통의 종으로 분류된 25종 가운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것이 현존하는 우리다.
침팬지류와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은 직립 이족 보행이다. 생존에 불리한 점이 많은 직립 이족 보행이 오직 인류에게만 발현된 것은 큰 수수께끼다. 이를 둘러싼 많은 가설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는 '음식물 운반 가설'인데, 손으로 음식을 날라 가족과 나누어 먹으며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됐다는 설이다.
출산 간격이 긴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류는 상당히 출산 간격이 짧다. 수유기간은 2~3년이고 수유기간 중에도 충분히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생존과 번식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인 셈이다. 게다가 인간은 많은 아이를 낳더라도 가족과의 공동 양육을 통해 아이를 길러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할머니 가설'이 나왔는데, 인간에게 폐경이 존재하는 것은 공동 양육을 위해 진화한 형질이라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이다.
이밖에도 이 책은 '초기 인류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인류는 어떻게 몸을 지켰을까' '왜 강인한 인류는 멸종했을까' 등 다양한 물음에 답을 준다. 1~3부로 나뉜 책은 각 챕터에서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 멸종한 인류의 종, 최후의 생존자 호모 사피엔스를 차례로 다룬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인류는 언제, 어디서든 결국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유한한 지구에서 인류는 인구를 늘려가기 위해 여러 환경을 견디며 살 수 있어야 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인류는 결국 스스로 구했다. 이런 점은 코로나19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쩐지 막연한 희망같은 것을 품게 한다. 27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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