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6월의 햇살은 생명력이 넘친다. 울 밑에서는 접시꽃과 수국이 피어나고 밭에는 채소들이 무성하다. 따가운 햇살 아래 농부들은 모심기를 마치고 마늘과 양파를 거둔다. 이른 더위에 숲은 뭇 생명과 짙어간다. 백련 연지에는 연잎과 연 봉오리가 맺혔다.
내가 사는 암자에는 계절 따라 처음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종종 있다. 우연히 들렀다가 절이 맘에 들어 친구와 다시 오는 분들이다. 또 누구에게 들었거나 사찰이 아름답다는 인터넷 반응에 찾는 이들이다. 주지가 절에 있거나 누각에서 차를 마시다가 만나게 되면 자리에 모셔 다담을 나누지만 외출 중이면 도량만 산책하고 가신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에는 크기와 형태에 따라 실(室), 방(房), 정(亭), 대(臺), 각(閣), 당(堂), 헌(軒), 누(樓), 재(齋), 관(館), 전(殿)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망월사 누각은 규모가 작다. 아직 정식 명칭은 정하지 못했지만 누각 안에는 다정헌(茶情軒)이라는 현판이 걸렸다.
소년 시절 경복궁이나 비원, 용인 민속촌, 안동 하회마을, 여러 고장의 고택을 참관할 때 한옥의 누각이 부러웠다. 저 위에 올라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글도 쓰고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언젠가 나도 건물을 지을 때 저런 누각을 한번 가졌으면 하는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 씨앗이 이곳에 와서 다섯 칸 집을 짓고 누각을 한 칸 달아 보탰다. 앞에는 낙화담이 보이고 뒤에는 산이 배경이 된 배산임수 지형이다. 여기에 터를 정비해 대웅전과 원광선원을 신축하고 심우당을 보수하여 조그만 암자를 열었다. 오가는 분들과 만나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인생을 배운다. 때때로 밭에 나가 연꽃을 피우고 채소를 가꾸고 마음 밭을 일군다.
불교에서 사람과의 만남은 눈먼 거북이 널빤지를 만난 인연과 같다고 한다. '맹구우목'(盲龜遇木)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인간으로 태어나 붓다의 가르침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희유(稀有)한 인연인지를 비유하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살고 있던 눈먼 거북은 숨을 쉬기 위해 백 년에 한 번씩 물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바다에는 둥그런 구멍이 뚫린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거북의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 그 나무를 만나 구멍으로 쏙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그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로또 1등보다 더 어렵다. 어디 불교와의 만남으로만 한정할 수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 간의 인연도 이와 같으리라!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시인의 노래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억겁(億劫)의 인연을 통째로 이끌고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온 생(生)이 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이 부서지고 또 부서졌을까? 바람만이 그 아픔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했던가. 주인과 방문객은 어떤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어디 방문객이 사람들에게만 한정했을까? 별들과 꽃들과 나무들과 새들과 바람 소리까지 포함하지 않았을까? 늘 곁에 가까이 있는 가족과 무심코 만나는 이웃들의 존재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축복이며 맹구우목인지 깊이 느껴야하지 않을까! 순간순간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이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이런 만남이 사회 불공정으로 인해 불신과 원망을 낳는다. 대립하고 갈등이 깊어진다. 메마른 정원에 물을 주듯 관계를 복원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겸손하고 친절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선물은 인연이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