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적반하장

입력 2020-06-17 15:43:57 수정 2020-06-17 19:22:14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탈원전을 주장하는 반핵단체는 원자력산업을 '화장실이 없는 아파트'라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을 하면서도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할 수 있는 부지도 시설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정부와 원자력산업계는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과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 마련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1980년대 안면도, 1990년대 굴업도, 2000년대 부안 등 10여 차례의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위험한 시설인 양 전단을 뿌리고 주민을 선동해서 결국 지난 40년 동안 부지 조사조차도 한 번 해 볼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부지를 판단하기 위해 땅을 파 보고 조사를 해야 하는 이 과정은 주민 동의가 필수다.

자신들이 반대해서 마련하지 못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부지인데 그게 없다고 원자력계를 비난하니 실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전단지에는 어김없이 무모한 가정이 들어간다. '고준위폐기물 1그램만으로도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앞에 서 있으면 엄청난 방사선 피폭을 받는다' 이런 것들이다. 결과는 맞다.

그러나 가정이 틀렸다. 이런 논리라면 제철소의 용광로 앞에 방호복 없이 서 있어도 위험하고 울산의 화학공장에도 1그램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화학물질은 무수히 많다. 그런 가정을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지구가 쪼개질 만한 지진이 와도 안전하도록 원전을 만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미 그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유소, 도시가스 배관 등이 파괴돼 원전 걱정을 할 틈이 없을 텐데 말이다.

시위 현장에 가 보면 허수아비에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붙여 놓고 때리기도 하고 불을 붙이기도 한다. 만약 그 허수아비에 자기 이름이 붙여져 있고 그것을 패고 불사르고 한다고 생각하면 당사자에게는 큰 충격일 것이다.

이런 짓은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문제에서도 나오고 있다. 사실이 아닌데 그런 적이 있다고 부득불 우겨서 하나의 허수아비를 만든다. 그리고 이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이다.

경주에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할 당시에 2016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월성원전에서 빼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약속을 했다고 반핵단체들은 주장하는데, 사실일까?

내가 아는 상식과 경험으로는 그런 약속을 했을 리가 없다.

첫째,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위한 부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런 확정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리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다른 자리로 간다고 할지라도 그런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신문기자의 말은 기사다. 대학교수의 말은 논문이다. 그리고 공무원의 말은 공문인 법이다. 설령 어떤 얼빠진 공무원이 그렇게 말했다 치더라도 공문에 없는 공무원의 발언은 개인의 발언일지언정 결재선을 통해서 정제된 정부의 공식 발언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말이 있었다면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그 말을 뱉은 공무원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셋째, 2016년은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하기로 약속한 시기다. 그것이 공론화로 2020년으로 미루어지고 또 이번 정부에서 재공론화를 한다면서 더 미루어진 것이다. 사실상 그게 중간저장시설 건설 지연의 이유고, 나아가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를 추가 건설해야 하는 이유가 됐다.

세상은 점점 유불리(有不利)에 눈이 어두워져서 옳고 그름이 없어져 가는 느낌이다. 우리의 합리적 판단을 감정풀이로 유도하는 세력들이 전횡한다. 적반하장, 무모한 가정 그리고 허수아비 때리기에 선량한 우리는 속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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