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다녀오면 만들어주시던 열무비빔밥 더 생각나

간호사가 되고 지난해 5월쯤 병원을 옮기게 되면서 근무하게 될 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아버지와 친지들의 걱정 섞인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곁에 모시며 챙겨드리고 싶단 의지를 표하며 노파심을 잠재운 결과 그곳으로 모실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들던 병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몇일 건너 한번, 2주에 한번으로 점차 줄어드는 방문 횟수에 조금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뵐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층만 오르면 뵐 수 있는 할머니는 내게 점점 잊혀져갔고 그렇게 쓸쓸히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의 마지막 소식은 2020년 1월 떠났던 제주도 여행에서 단 한 통의 전화로 전해들어 더욱 안타깝다. 할머니의 임종소식에 슬픔과 한스러운 자책이 섞인 눈물이 내게서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 손에 자란 20년전 나의 유년시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먹고 살기 바쁘단 핑계로 외면했던 할머니와의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내게 너무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1주일 전인 마지막으로 뵌 그날, 그 이야기만 귀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 하는 여러 후회도 남는다.
당시 "용수야, 할미가 지금 너무 아픈데 그래도 네 덕에 좋은데 와서 고맙다. 네가 고생이 많다." 라며 몇번이고 되뇌이시던 할머니께 듣기 싫다며 만류했던 나.
뭐 그런 말씀을 하시냐며 편찮으셔도 참고 이번해 겨울만 잘 나자고, 그러면 내가 아빠 사는 곳 옆에 좋은 요양원 지어서 매일 보며 친구분들도 만나게 해드리고 여기보다 훨씬 좋은곳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다짐 하듯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당시 " 삼촌이랑 고모들도 보고싶네... "라며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뒤돌아 섰다. 어쩌면 할머니는 그때 아시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말을 할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
사랑하고 감사한 할머니께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할머니.. 할머니 손에 컸던 20여 년전 유년시절이 나이를 이렇게나 먹고 이제야 모두 하나하나 기억나네..
그렇게 보내드리면 안되는거였는데, 미안해 할머니...
유치원 다녀오면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맛있는 열무비빔밥이 오늘따라 자꾸 생각나네.
나 이뻐해줘서 고마웠고 쓸쓸히 홀로 돌아가시게 해서 미안해.
부디 편히 쉬세요 .. "
오늘 저녁은 할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열무비빔밥을 해먹으려고 한다.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었던 그때로 아니,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여느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권오순 할머니의 귀여운 손자 정용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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