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980년대 박현기의 비디오 아트와 행위예술

입력 2020-06-09 13:59:57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1984년 새해 벽두에 한국인들을 밤새우게 한 아트쇼가 있었다. 바로 백남준이 기획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이다.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전 세계를 한 순간에 위성으로 연결한다는 충격적인 이벤트에 관심을 보였고, 더군다나 이 초대형 기획을 한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 점은 왠지 모를 자부심과 기대감에 부풀게 만들었다.

백남준이 전 세계를 무대로 미디어의 긍정적이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안 한국에서 그의 영향을 받아 비디오 아트를 개척한 작가가 있었다. 그는 바로 대구에서 건축가이자 현대미술가로 활동하던 박현기이다. 그가 비디오 아트를 처음 접한 것은 1974년경 대구 미문화원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서였다. 그는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편집하여 영상화한 백남준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백-아베 신디사이저)에 강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러한 기술은 방송장비처럼 기성품화 되어갔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무제(비디오 돌탑)'(1979)는 실제 돌탑 사이에 가상의 돌 영상을 보여주는 TV모니터를 끼워놓은 작품이다. 그의 비디오 작품 전반에는 실재와 가상의 구조가 등장하는데 이는 단지 비디오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낙동강 물에 거울을 꽂는다든지, 수지로 만든 가짜 돌을 돌탑 사이에 넣는다든지 실재와 가상의 구조는 그에게 지속적인 실험 대상이었고 비디오 작품은 다른 재료의 작품과도 밀접하게 이어진다.

특히 행위예술은 박현기가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의 야외 이벤트를 비롯해 다양한 행위예술을 전시실 안에서 뿐 아니라 야외에서 수차례 실행하면서 그의 철학을 잘 실현해 주었다. 담대한 이상가였던 그는 1981년부터 1982년 사이에 대구시내와 대구인근 자연에서 대규모의 퍼포먼스가 감행하였다.

1981년에는 '도심을 지나며(Pass through the city)'(1981, 대구 도심)를 보여주었다. 맥향화랑에는 벽을 부수고 대형 모형 돌을 설치하였고, 대구시내 한복판에서는 대형 트레일러에 거울을 단 모형 돌을 싣고 한일로를 관통하였다. 또 도심 곳곳에는 거울을 붙인 돌들을 설치하여, 시민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돌이 돌인지,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 것인지 모를 반영과 반전의 곳곳을 탐지하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 프로젝트를 만들어갔다.

1982년 '전달자로서의 미디어(Media as translators)'(1982, 강정 낙동강변)는 총 6개의 비디오 설치와 퍼포먼스로 구성되었고, 1박2일 동안 낙동강 어느 섬에서 광활한 자연을 무대로 진행되었다. 그 중 그의 철학을 잘 반영한 작품인 'Fire Drawing'은 깜깜한 밤에 원형으로 피워진 불 가운데 나체의 사람들이 들어가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으로 완성된다. 작품은 불이 사그라지면서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 행위를 통해 박현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불완전한 우리의 지각과 인식의 차이일 뿐 그 본질은 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려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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