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 세력의 헤이트 스피치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모임 페이스북에 쏟아진 수많은 망발 중 하나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5월 초 윤미향 민주당 의원을 상대로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을 처음 제기한 후 이곳에서 온갖 혐오 표현과 인신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소장 손영미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이 할머니가 결국 사람을 죽게 하는구나' '오기와 노욕에 가득 찼다' '돈 욕심에 헛소리를 한다' 등 반인륜적 혐오 표현의 강도가 더욱 거세졌다.
일부 친여(親與) 인사의 궤변이 이 할머니를 향한 막말을 부채질했다.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좋다는 마음이 아니라 할머니는 특이하게 이걸 배신의 프레임으로 정했다'(우상호), '할머니가 고령으로 기억력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우희종), '기자회견문을 할머니가 직접 쓴 게 아닌 것이 명백하다'(김어준) 등 이들은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기 바빴다.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변영주 감독조차 "당신들의 친할머니들도 만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나. 그걸 받아 적는 언론이 문제"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침묵 아닌 침묵으로 이를 방조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 할머니가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사실 관계 확인이 먼저'라는 입장만 되풀이하다 최근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며 윤 의원을 감싸고 나섰다.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어쨌든 윤 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신 분이다.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결정하는 데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윤 의원을 지지했다. 김해영 최고위원이 "당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며 당 지도부에서 유일하게 목소리를 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21대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당선된 윤 의원과 그 지지 세력들이 이제 이 할머니에게 진짜 위안부가 맞냐며 일본 극우와 한목소리를 낸다. 이 할머니를 '참 대구스럽다'며 지역 비하 발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여전히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는 동안 오히려 이 할머니는 "데모(시위) 방식을 바꾸고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며 내일을 내다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며 이 할머니를 치켜세웠다. 이를 두고 강성 지지층의 이 할머니에 대한 2차 가해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한 문 대통령이 '중단' 지시를 내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경기가) 거지 같다"고 말했다가 지지 세력들로부터 이른바 '신상털기'를 당한 한 반찬가게 주인과 관련해 "그분이 공격받는 게 안타깝다"고 밝혀 사태 진화에 나선 바 있다.
이처럼 자신이 숭배하는 권력자의 입을 맹목적으로 쳐다보고 그 권력을 비판하는 이에겐 조리돌림을 가하는 행태를 전문가들은 일종의 좀비 정치이자 전체주의 전조 현상으로 본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소개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가 저지르는 게 아니라 공감과 사유 능력이 부족한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때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 할머니를 향한 2차 가해가 수그러들더라도 악마의 잔상은 생생히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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