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기본소득 논의 가당찮다

입력 2020-06-08 06:30:00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물질적 자유'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창룡 논설주간
정창룡 논설주간

정치인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선심성 현금 살포가 세금과 빚으로 국민들에게 되돌아가리란 사실이다. 그 빚이 머잖은 미래 국민의 몫이라는 말은 더더욱 않는다.

1차(11조2천억원), 2차(12조2천억원)에 이어 3차 추경(35조3천억원)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한 해 동안 59조원 가까운 추경을 한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거니와 절반이 훌쩍 넘는 37조5천억원은 빚에서 나온다. 갈수록 절대 규모가 늘고 국채 발행은 대담해진다. 정치인들은 국민 세금을 제 호주머니 속 쌈짓돈 쓰듯 뿌린다. 국민들은 빚의 향연에 길들어간다.

전 국민에게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씩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돌아갔다. 정치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한 결과다. 이를 위한 추경 적자가 37조5천억원이다. 이로써 빚이 국민 1인당 72만원, 4인 가구 기준 290만원씩 늘어났다. 100만원을 받자고 290만원 나랏빚 내는 것을 눈감은 꼴이다.

그런데도 정치인 어느 누구도 '이젠 그만'이라고 외칠 생각이 없다. 돈은 뿌린 만큼 거둔다는 민주주의의 역설을 이미 지난 선거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2년이면 또 대선이다. 여당 정치인은 당·청에 찍힐까 눈을 감고, 야당은 민심을 잃을까 입을 닫는다.

'그만'은커녕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해 약은 민심을 읽은 정치인들이 오히려 국민 기본소득 주장을 더 강화하고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본소득 물꼬를 튼 뒤 이슈를 선점했다며 고무돼 있다. 너도나도 이제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거드는 형국이다. 도지사에 장관까지 지낸 한 여당 실세는 나라 곳간지기를 향해 '곳간 안에 든 재원이 본인 거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윽박지른다. 제2, 제3의 재난지원금을 주자는 주장에서 나아가 매달 주자는 주장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선진국의 국민 기본소득 실험은 실패했다. 1960년대 '빈곤과의 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자녀가 있는 모든 가구에 연 1천600달러(현 시세 한화 약 1천340만원)를 주는 기본소득 논의를 벌였지만 '근로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문제를 극복할 수 없어 논의를 중단했다. 이후 핀란드가 2017~2018년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한 후 최근 "취업 의지를 북돋우는 효과는 별로 없었다"는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에 앞서 스위스는 2016년 전 국민에게 매달 2천500스위스 프랑(한화 약 320만원)의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빚 외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다. 국민 1인당 30만원을 지급할 경우 연간 187조원이 필요하고 40만원을 지급하면 249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512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치 않은 돈이다.

가뜩이나 올해는 세수가 급전직하다. 세수 펑크 우려가 크다. 세수는 2016~2018년 매년 예산안 대비 19.6조~25.5조원 흑자를 달성했으나 지난해 -1.3조원으로 돌아섰다. 올해는 세수 부족분이 -18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쓰는 돈은 연신 사상 최대를 갈아 치우는데 세수 부족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데 기본소득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이러니 현재를 탕진하고 미래를 착취하는 것이란 말이 나온다.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은 '7년 전쟁'에서 패배 후 낙담하는 루이 15세를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우리 뒤에 대홍수(우리 죽은 후에 대홍수가 나든 말든)." 지금 정치인들이 퐁파두르 같은 생각을 하며 정치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