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강의 생각의 숲] 일제를 찬양했던 문학판 카포(Kapo)

입력 2020-05-25 17:3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 작가

2차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수용소에는 '존더코만도'와 '카포'(Kapo)라 불리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잡혀왔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나은 대우를 받았다. '존더코만도'는 수용소에서 잡일을 담당했다. 주로 가스처형실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그 일을 하며 아주 조금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카포는 존더코만도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다. 카포는 주로 살인과 강도, 강간 전력이 있는 전과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을 관리했다. 나치 대신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행정사무 처리도 맡아 했다. 같은 민족인 수용소 유대인들 위에 군림하며 자기 맘대로 구타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당연히 나치의 묵인이 있었다. 수용소 안 유대인들 간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부류였으니 그들에겐 개인 주거공간도 주어졌다. 나치와 같은 식사가 제공되고 당연히 체력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이렇게 길러진 체력으로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나치는 자신들이 원하는 수용소 질서를 유지하고 유대인들끼리 반목하는 데 카포를 철저히 이용했다. 말 그대로 나치의 개를 만들었고 카포들은 충실한 개가 되어 자신의 동족을 물어뜯는 역할을 서슴없이 자행했다.

일제강점기에도 나치의 카포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젊은이들을 전장에 몰아세우고 꽃다운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팔아넘기고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일본 경찰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나쁜 짓거리들을 했던 사람들. 해방이 되고 그들 중 누군가는 미군정과 독재정권에 아부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갔다. 그들은 변명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독립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그 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라고. 그것이 결코 민족을 팔아먹은 자들의 변명이 될 수 없음에도 한편에서는 흘러간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버린다.

문학판에도 그런 카포들이 있다. 그들의 펜은 일본의 칼이 되어 동족들을 대동아전쟁의 희생양으로 내몰았고 일제의 비호 아래 권력이 됐다. 해방 이후에는 소위 잘나가는 작가로 존경받으며 교과서에까지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그들에게 죗값은 없다. 허울 좋은 문학성으로 무장한 채 그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발자취로 남아 있다.

작가 김동인은 조선총독부에 찾아가서 자신이 짠 친일계획을 전하며 적극적인 친일행각을 벌였다. '광명의 원천인 태양의 단순간결한 표시인 일장기. 국체(國體)의 위의(威儀)를 넉넉히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장기는 가장 우수'라고 일본을 찬양했다. 그럼에도 모 언론사에서는 문학상을 제정해 지금까지 그를 기리고 있다.

'몸에 가득 아침하늘 햇볕을 받아/ 공송하게 가지런히 허리 굽혀서/ 우리 임금 천황폐하 계신 곳을/ 마음모아 정성모아 요배 드리'자는 이광수,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 훌륭히 싸워주 공을 세워주'라는 노천명,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카제(神風) 특별공격대원'이라고 노래한 서정주, '허리 굽은 할머니도 기를 흔들어/ '반자이' 소리는 하늘에 찼네'라던 이원수 등등. 우리의 언론들은 그들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며 문학적 성과로만 평가하고 문학상으로 그들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더 슬픈 것은 그런 문학상을 받으려는 작가들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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