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1970년대 새로운 미술흐름의 전조

입력 2020-05-26 10:50:16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1960년대부터 대구에는 대학교에 미술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62년 대구가톨릭대학교(구 효성여자대학교)에 생활미술과가 신설된 후 1970년엔 회화과가 생겼고, 1964년 계명대학교에 미술공예학과, 1968년 영남대학교에 응용미술과가 생겨났다. 1970년대 초부터 대학에서 교육받은 젊은 작가들이 지역 미술계에 배출되기 시작되었고, 이들은 지역 화단에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계명대에서는 신진들의 여러 모임이 만들어졌다. 1971년에는 권정호가 중심이 되어 학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모여 청목회(靑木會)를 만들었고, 1972년에는 이집회(二集會)가 창립되어 박종갑, 박무웅 등 계명대 출신 당대 신진들이 함께 활동하였다. 또한 1975년에는 추상 경향의 작가들의 직전(直展)이 만들어져 작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미 1972년에는 추상화가들의 모임, 신조회가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이영륭, 유병수 등 당시 중진작가들이 중심으로 창립되었고, 이들은 학교에 재직하면서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비구상계열은 지역 화단에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1970년대가 시작될 즈음 한국미술은 이전의 국전과 반국전, 보수와 진보, 기득권과 재야세력, 구상과 비구상 등의 구분을 넘어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해프닝 등 더욱 급작스러운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르테 포베라, 모노하 등 서구와 일본에서 일어난 반예술 운동은 유신 체제와 같은 억압된 정치 환경과 기성세력에 대한 반감을 가진 신진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대구에서는 지역 대학 출신의 신진들과 더불어 서울권에서 대학을 나온 지역 출신 작가들이 대구에 내려왔고,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국제 미술의 흐름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연구하면서 평면을 벗어나 당대의 새로운 조형언어를 습득하고자 하였다. 1973년 김기동, 이향미, 김종호의 〈Exposé전〉, 같은 해에 열린 〈현대작가초대전〉(대구백화점 화랑)과 1974년 〈한국실험작가전〉은 전위 혹은 실험이라는 이름 아래 평면을 벗어난 설치와 사진, 오브제, 여러 매체로 표현한 개념미술 등을 보여주면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예술 언어를 구사하였다.

몇 차례 전시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을 소개하는 데서 나아가 이를 확장시키고, 더불어 대구가 동시대 미술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미술의 판도를 만들어보려는 꿈을 기획한다.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들을 배경으로 1974년 10월 계명대학교 미술관에서 '대구현대미술제'가 새로운 형식의 미술축제로 열렸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폐쇄적인 데서 개방적인 데로', '침체에서 흐름'으로 그 방향성을 설정하였다. 이강소는 이러한 기획이 1970년대 세계적인 흐름을 익히고, 이를 자신의 언어로 삼고자 했던 작가들의 자발적인 요구에 부응해 계획되었다고 말한다. 미술제의 추진은 이강소를 비롯해 김기동, 김영진, 김재윤, 김종호,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최병소, 황태갑, 황현욱 등이 함께하였고, 첫해 70여 명이 참여한 대구현대미술제의 작가 가운데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룹 'S.T', '신체제'의 작가 30여 명도 함께 해 동시대 미술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었다.

박민영 대구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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