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코로나19가 대구에 상륙한 이후 3개월 만에 지역 경제는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소강 국면에 접어드는가 싶던 코로나19는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 확산으로 재차 기세를 떨치고 있다. 조금씩 기지개를 켜던 소비심리가 다시금 위축되진 않을지 염려스러운 이유다.
이 가운데 지난주 대구 한 백화점에서는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다. 최상위 명품 브랜드인 샤넬의 가격 인상 예정 소식이 들리자 아침 일찍부터 제품을 사기 위한 줄이 백화점 건물을 둘러싸고 길게 이어졌다.
코로나19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는 비판은 제쳐 두고, 소비의 관점에서만 보면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명품 소비는 구매자 자유로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라는 시선과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데 줄까지 서 가면서 명품을 사는 것은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해 불편하다는 시선이었다.
해당 기사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난장판이 됐다. '자기 돈으로 산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부터 '줄을 선 사람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샤넬 백을 사려는 긴 줄이 침체된 대구 경제 현장과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이후 대구 경제는 유통업, 숙박업, 여행관광업 등에서부터 피해가 시작돼 ICT(정보통신기술)·SW(소프트웨어)업계, 스타트업 등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역 경제 현장의 목소리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구 업체라는 낙인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대구 지역 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지역 제조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10곳 중 8곳(78.3%)은 2분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감소가 예상된다고 답했다.
대구경북 시도민은 소비를 주저하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최근 발표한 '최근의 대구경북지역 실물경제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가 가계 재정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타내는 현재생활형편 CSI(소비자 동향지수)는 지난 2월 87, 3월 73, 4월 69로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지역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고 있고 불확실한 경기 전망에 돈 쓰기를 꺼린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나마 최근에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과 대구시 긴급생계자금 등 현금성 지원이 이뤄지면서 밑바닥 경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모습이다. 재난지원금 사용 첫 주말인 지난 16일에는 대구 중구 서문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 많은 시민들로 붐비기도 했다. 온라인으로는 결제를 할 수 없어서 시민들이 돈을 쓰려고 시장과 소매점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샤넬 줄 서기와 붐비는 전통시장 모두 방역적 측면에서는 해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외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일은 지역 내수 경기 활성화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어 비난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샤넬 줄 서기를 무작정 비난만 하기 힘든 이유는 이것이 지역 소비심리 회복의 신호이자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가 텅 비었던 지난 2월 말, 3월 초였다면 과연 샤넬 매장 앞 긴 줄이 생겼을까. 일부를 제외하고 '셀프 자가격리' 수준의 인고의 시간을 보낸 대구 시민은 비로소 돈을 쓰려고 밖으로 나오고 있다.
회복되는 소비심리의 대상이 명품이 됐든 돼지고기가 됐든 지금은 소비를 북돋워야 할 때다. 이것이 방역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대구 경제는 최악이다. 소비심리 회복에는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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