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다니는 골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을 즐기려는 듯 표정이 느긋하다. 차가 다가가도 피할 생각이 없는지 미동도 안 한다. 행여 다칠까 조심하며 최대한 간격을 벌려 고양이를 지나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고양이. 먹을 걸 주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을 피하는 습성을 가진 길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난 걸까.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어떤 대체 전략도 그것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러한 전략이 유전자 단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ESS 이론의 동물행동연구 사례를 예로 설명함으로써 진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켰다.
호전적인 매와 유순한 비둘기로 이루어진 집단에서의 싸움 전략을 예로 보자. 그곳에서는 언뜻 싸움꾼 매의 전략이 유리해 보이지만 공격적인 매의 전략은 비둘기를 만났을 때만 이득을 본다. 매끼리 부딪치면 본전도 못 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작위적인 그들의 싸움에서 손익계산을 해보면 매가 비둘기보다 약간 더 많은 비율로 존재할 때 두 개체의 평균득점이 같아진다. 이때가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개체 수준에서 보면 품위 있는 비둘기보다 공격적인 매의 전략을 조금 더 많이 구사하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인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갈매기 집단이 있다 하자. 어느 날 그들 중에 잡은 물고기를 낚아채는 얌체 돌연변이가 생겨난다. 애써 고생해 먹이를 구할 필요 없는 그들의 얌체 전략은 이득을 보기 시작하여 그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자 어부 갈매기가 감소하고 가용한 물고기가 줄어들어 얌체 갈매기는 어느 시점부터 이득을 볼 수 없게 된다.
다시 어부 갈매기가 증가한다. 이러한 집단에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어부 갈매기와 얌체 갈매기가 8대 2의 비율일 때이다. 혹은 각 개체가 시간의 8할을 어부로 2할을 얌체로 사는 전략이 진화적으로 가장 안정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에서 벗어나는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어 사라지게 된다.
다시 길고양이로 돌아가 보자. 만일 모든 고양이가 길고양이 전략을 택한다면 어떨까.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동료들과의 영역 다툼에서 희생되거나 인간의 영역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로드킬을 당하기 쉽다. 만일 이들 중 사람에게 다가가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이들은 생존에 이득을 보기 시작한다. 사람을 따르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아늑한 잠자리와 양질의 식사를 보장받는 것이다. 고달프고 배를 곯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야생의 생활과 작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택하는 고양이가 늘어날수록 집고양이 수는 늘어나고 길고양이 수는 줄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길고양이가 집고양이 전략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에게 선택받는 개체는 일부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선택되었다 버려지는 경우에는 애초에 길고양이였던 것보다 못한 신세가 된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현상은 팍팍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진화적으로 안정되기 위한 길고양이의 유전적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우리를 놀랍게 만든 것은 왼쪽은 파란색으로 오른쪽은 핑크색으로 물든 한반도를 보는 것이었다. 선거 결과는 그러지 않아도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를 다시 동서로 나누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블루나 핑크 지역의 유권자들이 100% 같은 색깔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 시사하는 바는 한 가지 전략으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개체는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집단에 집고양이가 생겨나는 것처럼 그 하나의 전략이 매우 잘하지 않는 한 언제든 돌연변이 전략이 침입해 세를 늘릴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어떤 전략도 대체 불가능한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는 색깔 패턴도 그러한 종류인지는 지켜봐야 될 일인 듯싶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