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나의 방파제 우리 아버지 "사랑합니다"

입력 2020-05-17 17:30:00 수정 2020-12-10 11:07:14

지난해 3월 팔공산에시 찍은 여상협 (서대구현대정비) 씨와 아버지 여옥동(1944.6.5~2020.5.4·가운데) 씨의 가족 사진. 가족제공.
지난해 3월 팔공산에시 찍은 여상협 (서대구현대정비) 씨와 아버지 여옥동(1944.6.5~2020.5.4·가운데) 씨의 가족 사진. 가족제공.

사랑합니다. 아버지. 여지껏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제대로 못해봤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가장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으로 남아있다.

우리 아버지는 뜨거운 쇳물을 녹여 무쇠를 만드는 주물공장에 다니셨다. 여유롭지 않은 형편에 3남매를 키우시느라 평생 일을 해오신 아버지는 일흔이 넘도록 아파트 경비일도 하셨다. 힘이 드셨겠지만 굳건한 의지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항상 자긍심을 느끼신 분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오시며 자식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신 아버지는 우리들에겐 항상 힘겨운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같은 존재다. 우리를 위해 여지껏 힘들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버텨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전 쯤 담도암에 걸리셨고, 평생 일만 아시던 아버지가 일을 내려 놓으셨다.

아버지는 실수를 웃음으로 만들어 자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어린시절 아버지 월급날 첫째 누나와 둘째 누나가 보릿쌀 한 되를 사러간 적이 있는데, 노란 봉투에 담긴 쌀을 둘째 누나가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에 고집을 부리다 넘어져 쏟았다. 그때 누나는 아버지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으로 오지 않다. 이 상황을 들으신 우리 아버지는 혼을 내기는 커녕 전봇대에 비친 그림자로 귀여운 토끼와 새 모양을 만들어 어린 둘째누나를 오히려 위로해주셨다. 기분을 풀어 준 뒤 둘째 누나를 목마까지 태워 집으로 오신 그런 인자한 분이셨다. 둘째 누나는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만들어 주신 가로등 아래 아버지의 그림자가 눈에 선하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팔공산에 올라 시원한 공기를 마셨던 그 시절도 그립다. 어머니, 누나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산에 가자'고 말씀 하실 것만 같다.

2018년 6월 제주도에시 찍은 여옥동(1944.6.5~2020.5.4·왼쪽 두번째) 씨의 가족 사진. 가족제공.
2018년 6월 제주도에시 찍은 여옥동(1944.6.5~2020.5.4·왼쪽 두번째) 씨의 가족 사진. 가족제공.

누나들과 제주도 여행에서 보내온 사진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때 함께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평생 일 만하시고 병고와 싸우시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참 죄송스럽다. 아프시면서 불편하시면서 큰 티도 내지 않으시다보니, 아버지의 고통을 다 느끼지 못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너무 한스럽다. 하늘나라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들 여상협(대구 서구 대구현대정비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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