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초현실자연주의 화가 정관호

입력 2020-05-17 06:30:00

초현실자연주의에 바탕한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 정관호가 자신의 화실에서 막바지 그림 손질을 하고 있다.
초현실자연주의에 바탕한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화가 정관호가 자신의 화실에서 막바지 그림 손질을 하고 있다.

정관호 작
정관호 작 '숲 속 물고기'

"나는 행복을 상징하는 의미를 그렸다. 미의 정의는 주관적 사고에 있다. 행복의 정의 또한 주관적 사고와 개인의 만족에서 시작된다. 구도 색상 계절 자유 희망 사랑 등 내 그림 속 전체적인 내용은 공존이다. 내 숲속 물고기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초현실자연주의 화가 정관호(47)의 화론(畫論)이다.

최근 그의 화풍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3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바다에 대한 상징인 산호, 숲을 상징하는 나무들 그리고 그 속을 유영하는 상상 속 물고기. 이 셋은 모두 실재의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대상들로 정관호의 화폭에서 묘하게도 공존하고 있다. 특히 '숲속 물고기'는 우연히 등장한 게 아니라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나만의 화풍을 고민하던 작가가 10여년에 걸쳐 다듬고 깎는 과정에서 태어난 '공존'의 상징성이다.

대구시 북구 태전동 한 아파트 상가 3층. 265㎡의 화실은 작가의 작업실을 겸해 취미로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3년 전 둥지를 틀었다.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94학번)를 나와 계명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정관호는 대학 재학시절이었던 26살에 결혼을 했다. 이른 결혼은 작가의 길과 생활인의 길이라는 무거운 짐을 그에게 지웠다.

"아기가 나면서 먹고 살기 위해 하루에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해도 생활은 늘 빠듯해 방황의 시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어릴 적 꿈이었던 화가의 길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와중에서 2001년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 안 극재미술관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 내면적 표현'을 주제로 생애 첫 개인전을 갖는다. 전업 작가로서 첫 출발이자 그가 20년째 지향하고 있는 자연주의 화가로서 데뷔였다.

정관호의 초기 작품은 빠른 붓 터치가 관건인 인상파적인 표현기법을 이용한 계곡, 바다 등의 그림에 몰두했다. 2006년 제5회 개인전부터는 '2구상법'이 등장한다. 2구상법은 정물과 풍경을 한 화폭에 담아낸 것으로 그만의 자연주의적 창작 기법이다. 화면 구성도 가로로 길쭉한 프레임을 사용했고 나이프를 이용한 유화와 점 터치로 숲 풍경을 그래냈다.

"2구상법은 서정성을 중심으로 정물과 풍경이 상호 토속적 관계성을 맺으면서 공통의 심상을 지향하는 데 애썼으나 제 스스로 돌이켜 봐도 색감이나 구도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기법입니다."

그의 말처럼 정관호는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작가임을 짐작할 수 있다. 2구상법 이후 그의 그림을 또 변화를 겪는다. 그림이 단순화해지면서 배경이 없어지고 비구상적 요소가 더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 약 10여 년 간 걸친 방황과 반성을 통해 이제는 화가 정관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숲속 물고기'는 2011년 대구 수성아트피아 초대전 때 처음 등장한다. 이 시기에 그림의 전체 분위기는 어둡고 화면 멀리 한 줄기 빛이 보이면서 그 희망의 빛을 향해 찾아가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화면으로 옮긴 작품들이 주류였다.

"당시 숲과 다수의 물고기가 나오는 그림을 그렸었는데 호평을 받지 못하면서 다시 제 그림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이에 작가는 2012년 서울에서 '빛 숲속 물고기 여행'을 주제로 개인전을 열면서 그의 화면에 산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림 속 물고기도 관상어인 구피가 등장했다. 현재 작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집에서 구피를 기르고 있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상상화적인 요소가 많아지고 전체 그림의 분위기고 많이 밝아지게 됐다. 작가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졌던 것으로 기억했다. 이른바 정관호의 '숲속 물고기'연작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관호의 그림에서 색상이 화려해지고 숲과 산호, 물고기의 구도와 전체 화면의 안정도가 정착되면서 2018년 이후 숲, 산호, 물고기가 어우러진 '숲속 물고기'연작은 온전히 상상력의 산물로서 몽환적 분위기를 듬뿍 자아내게 됐다.

"저에게 그림은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하는데 무게중심을 두면서, 제 그림을 자평하자면 서로 다른 이념으로 상징되는 숲, 산호, 물고기가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 그림이 동화적이고 일러스트레이트적이지만 시각적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그림을 지향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관호는 첫 개인전을 연 이래 20년 동안 모두 16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개인전에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도 많았지만 그의 꿈 자체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앞으로도 그의 '숲 속 물고기'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들에게 보여줄 지는 작가도 솔직히 모른다고 했다.

그의 그림을 향한 열정과 '숲 속 물고기'여행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정관호는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대구미술협회 부회장이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