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문자의 시작 그리고 빅 데이터

입력 2020-05-11 17:30:00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주임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박명현 대구문화재단 예술진흥팀

문자의 시작, 그것은 인류 아카이브 역사의 서막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문자로 기록된 것은 6천년 전부터였으며, 장구한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도 문자는 기록을 위한 훌륭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일상의 일이나 중요한 사건의 기록은 소리를 통해 구전되거나 선과 그림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2만2천년 전 '프랑스 라스코 동굴', 7천년 전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일대기의 기록과 전달, 보존하기 위해 사용된 선과 그림들의 일례를 볼 수 있다.

인류는 문자 발견을 신이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자신들의 과거를 기록하여 보존했다. 불의 발견과 이를 통한 화식(火食)으로 인류의 신체가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으며 한층 진화된 신인류로 성장한 것과 비견할 수 있다. 문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를 시작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중국의 상형(표의)문자, 알파벳과 한글의 표음문자로 변화하며 나타나고 있다. 문자의 발현으로 백년, 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선대의 기억과 꿈을 이어주었다. 주변 일상 속 바다의 파도 소리, 사소한 산속 풀벌레 소리도 문자로 표현하며 기록할 수 있게 하였다. 선과 그림, 소리로 전승되어 뜻이 불명확하게 전달되던 것을 문자로 사상과 의미를 명확하게 전하며 우리의 일상을 오롯이 아카이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원전 160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세워졌다고 알려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러한 문자와 기록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의 상징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의 디지털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지로 보존되었던 수많은 자료들은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디지털 아카이빙 되고 있다. 자료의 축적 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경제의 확산으로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와 자료들을 쌓아가며, '빅 데이터'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문서 자료를 수집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식의 수동적인 방식을 탈피하여 데이터를 통해 혁신적이고 능동적인 형태로 일상의 문자와 영상을 포함한 수많은 자료를 '빅 데이터'로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카이브 역사의 서막을 문자가 열었다면, 빅 데이터를 통해 2막으로 진입한 아카이브의 역사는 이제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PC와 인터넷, 모바일 기기가 일상이 된 현대의 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삶과 맞물려 일상다반사들이 날 것 그대로 데이터로 저장되고 있다. 직접 제작하는 UCC를 비롯한 동영상 콘텐츠, 휴대전화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 생성되는 문자와 영상자료 등은 이의 활용을 통해 새롭게 도래할 아카이브 역사의 제3막을 예비하고 있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문화예술 분야도 잊혀져가는 근대의 자료들을 새롭게 디지털 아카이브로 복원하여 '빅데이터'를 활용한 문화예술의 재생산과 순환의 기초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문자로 문명의 도약을 이끌었던 인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서사들을 기록으로 축적해 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포스트 코로나의 문화까지 이 긴긴 세월을 이어온 인류 경험의 장대한 파노라마는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적 사실로 기억되며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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