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자귀나무 꽃이 필때면

입력 2020-05-10 18:00:00 수정 2020-12-10 11:06:33

젊은시절 남편 정순용과 고추밭에서
젊은시절 남편 정순용과 고추밭에서

올해도 신천변 둑에는 '합환수'라고도 부르는 자귀나무 꽃이 곱게곱게 피었네요. 별로 이쁘지 않은 저 꽃을 왜 좋아하냐 물으니 화려한 봄꽃이 다 지고 없을 때에 수수하게 피는 꽃이라 예쁘다고 말씀 하셨지요.

벌써 당신이 먼 길을 떠난 지가 8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다보니 이젠 그 지겹던 당신의 잔소리가 그리워집니다.돌아보니 그게 간섭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한번 당신과 부부의 연이 맺어진다면 좀 더 곰살맞고 싹싹한 아내가 되어보고 싶네요.

1971년에 결혼해 44년간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매일매일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멸치장사를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터로 향했던 동행의 시간이 그리워집니다.특히 추운 겨울 일터로 향하며 차가운 내 손을 꼬옥 잡아주던 당신의 온기가 아직도 전해지는것 같습니다. 단칸방에서 시작했던 신혼생활, 힘들고 어려웠지만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알콩달콩 웃음꽃을 피웠던 당신과의 젊은 시절도 가끔씩 주마등처럼 다가옵니다.

오랫동안 멸치 도소매업이라는 한 길을 걸으면서 당신의 동반자인 나에게 뿐만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얼굴 한번 붉히는 일없이 당신은 항상 따뜻한 나의 반쪽이었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했죠. 그래서 일까요. 당신이 저 세상으로 가기 1년 전, 명절을 앞두고 한 납품업자가 서울의 모 높은 기관에 명절선물로 멸치 2만상자를 주문 납품해 놓고 돈을 사기당해 참 많이도 속을 상했죠. 소송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없는 돈이 되어 버렸죠. 그 당시에는 많이도 힘들었지만 당신과 함께 했기에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죠.

당신은 늘 그랬죠. 우리 나이가 70이 넘으면 충청도 고향 백화산 밑에 고추농사 지으며 당신도 고생 많았으니 편안히 여생을 즐기자더니 딱 70이 되던 해에 혼자 먼 길을 가버렸으니 가슴이 메어옵니다. 함께 그리던 노후의 그림이 그리다가 마는 미완성이 돼버렸군요. 늘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당신은 가고 허망했던 8년의 세월을 이제는 잊을 만 하군요. 그래도 걱정마세요. 당신 첫 제사때 향불 피우니 할아버지 생신이라고 축가 부르던 당신의 예쁜 손녀 현지도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네요. 아들 내외도 건강하게 생업에 열중해 잘 살고 있답니다.

저 또한 건강하게 새벽장사(농수산물도매시장) 잘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준 큰사랑 잊지 않고 당신이 늘 내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간직하고 살아갈려고 합니다. 자귀나무 꽃길을 걸으며 지난 날을 떠올려 봅니다. 안녕히.

제가 편지를 다 쓰고나니 부칠 때가 없네요.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이해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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