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자호란에 대한 한 연구(구범진,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가 현재의 코로나 19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에서의 천연두 유행으로 청 태종(홍타이지)이 전쟁의 조기 종결을 서둘렀다는 견해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1637년 1월 16일 청군 진영에 마마 환자가 발생했고, 이것은 청나라가 조선 조정을 강화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천연두의 유행이 전쟁의 양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는 16세기 스페인의 코르테스가 아즈텍 문명을 정복할 때, 천연두의 유행으로 인하여 멕시코 원주민 2천500만 명 중 1천800만 명이 사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천연두를 두창(痘瘡), 두진(痘疹), 창진(瘡疹), 완두창(豌豆瘡)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조선 왕실에서도 천연두의 유행을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조선 후기 천연두와 악연을 맺은 대표적인 왕이 숙종이다. 1680년(숙종 6년) 9월 8일 숙종실록은 "그때 도성 아래에서 두창이 크게 번지니, 대신들이 아뢰기, '조정의 관리 중 궁궐에 출입하는 자는 모두 피하시고, 정시(庭試)도 창덕궁의 인정전으로 옮겨 설치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두창을 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대신들이 천연두 유행에 대비하여 조정 신하들의 왕 대면 금지, 과거 시험 장소 변경 등을 요청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천연두는 한번 앓게 되면 면역이 생겨 병에 다시 걸리지 않는데, 숙종이 이때까지 천연두를 앓지 않아 병이 옮을 것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숙종 자신은 천연두를 피했지만, 한 달 후인 1680년 10월 18일 왕비인 인경왕후가 두창에 걸렸다.
"중궁(中宮·왕비)이 편찮은 징후가 있었는데, 증세가 두창 병환이었다. 그때 임금도 또한 아직 두창을 앓은 적이 없었으므로, 약방 도제조 김수항이 청대하여 임금이 다른 궁궐로 이어(移御)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여, 인경왕후가 두창에 걸리자 숙종이 경희궁에서 창경궁으로 거처를 옮겼음이 나타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가족을 우선적으로 격리시키는 모습과 유사하다.
두창 발병 후 8일 만인 10월 26일 인경왕후는 경덕궁에서 20세의 어린 나이에 승하했다. 인경왕후의 승하 다음 해인 1681년 숙종은 21세의 나이로, 15세의 신부 인현왕후를 계비로 맞이하게 된다.
1680년 두창으로 왕비를 잃었던 숙종 자신도 두창을 피하지 못했다. 1683년(숙종 9) 10월 18일 숙종실록은 "임금이 편치 못하시니, 곧 두질(痘疾)이었다"고 하여 숙종이 두창에 걸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10월 27일에 환후가 더욱 심해졌지만, 10월 28일을 고비로 병세가 나아졌고, 11월 1일에는 크게 회복되어 딱지가 떨어졌다. 천연두는 처음 걸리면 열이 몹시 높고 사흘 만에 반점이 생긴다. 기창(起瘡·부스럼이 일어남), 관농(貫膿·고름이 흐름), 수두(收痘)를 지나, 낙가(落痂·딱지가 떨어짐)가 시작되기까지 대체로 12일 정도가 걸리는데, 숙종은 대체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저절로 낙가되기 전에 가려움에 긁어서 떼면 곰보 자국이 생긴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초상화 화첩인 '진신화상첩'에는 22명의 관리 초상화 중 5명의 인물에서 곰보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세계사의 인물 중에서는 괴테, 모차르트, 조지 워싱턴 등이 천연두를 앓았다. 숙종은 왕비와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인 경종과 영조도 천연두에 걸리는 아픔을 당했다. 1699년(숙종 25)에는 당시 왕세자로 있던 경종이 12세 때 천연두에 걸렸으며, 1711년(숙종 37) 9월에는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이 18세 때 두창을 앓았다.
연잉군에 이어 숙종의 두 번째 계비인 인원왕후도 천연두에 걸렸다. 인원왕후의 치료는 잘 이루어졌는데, 숙종과 인원왕후의 천연두 치료에 공을 세운 어의 유상(柳瑺)은 2품직을 제수받았다.
자신과 두 명의 왕비, 두 아들까지 숙종은 천연두와 특별한 악연을 가진 왕이었다. 조선시대 왕조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무서운 전염병이었던 천연두. 천연두는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기구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공식 선언하면서, 이제 현실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코로나19 종식 선언의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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