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든 책 위의 책/ 고운기 지음/ 현암사 펴냄

입력 2020-05-08 17:30:00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군위군 인각사 전경. 매일신문 DB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군위군 인각사 전경. 매일신문 DB
모든 책 위의 책
모든 책 위의 책

'삼국유사'는 누구에게나 낯설지 않고 지나치게 친숙하다. 교과서와 어린이 책, 인문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삼국유사를 변주한 책은 많다. 단군신화에 깊숙이 매료돼 삼국유사를 민족 신화와 역사의 교과서 같은 책으로 생각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이야기로 가득하다.

고려 국사(國師)를 지낸 일연이 고향으로 돌아가 필생의 작업으로 완성해냈다. 일연이 직접 찾아다니며 듣고 보고 느낀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일연의 현장에서 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삼국유사를 다른 책들이 따라가지 못할 우뚝한 경지에 서 있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모든 책 위의 책'인 이유다.

지은이는 삼국유사에 대해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놓은 책.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으로, 사대의 문학에서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놓은 책"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 책은 삼국유사 속에서 깊이 공감하며 읽을 만한 이야기를 엮어낸 역사 에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삼국유사로 '오늘'을 읽을 수 있다. 삼국유사 속 이야기의 한 대목과 이에 견주는 지금의 이야기 한 대목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옛날과 오늘이 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것이다.

신라 승려 혜통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혜통은 당나라 공주의 괴질을 고쳐주었는데, 괴질이 이무기로 변해 신라로 도망쳐 사람을 해쳤다. 혜통을 원망해 복수하는 것이었다. 혜통은 급히 신라로 돌아와 이무기로 변한 괴질을 쫓아냈다. 괴질은 다시 버드나무와 곰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괴롭혔다. 혜통에게 당한 괴질은 우회적인 방법이 아니고서는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우회적인 방법이란 곧 내부의 분열이었다. 왕은 혜통을 죽이려 했지만, 혜통이 왕의 딸을 살리면서 오해를 푼다. 혜통은 산에 숨은 괴질을 찾아내 불살계(不殺戒)를 주니 해악이 그쳤다고 한다.

괴질이 오늘날로 치면 전염병이다. 이무기나 버드나무로 몸을 바꾸는 것은 괴질의 여러 현상을 나타낸 것이며,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 신라의 경주까지 퍼진 병에 관한 기록이 이무기가 되어 달아났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이다. 장안이라면 지금의 서안이다. 서안에서 경주까지 천문학적 거리를 전염병은 거침없이 달려왔다.

혜통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오해를 풀어 화해하고 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괴질은 여러 모양으로 찾아와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지금, 삼국유사가 이런 지혜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삼국유사의 원문 가운데 이야기의 키워드를 뽑아 새로운 사자성어를 만들었다. 삼국유사 안의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우리식 사자성어 40개다. '앞만 지킬 줄 아니 뒤를 치라'는 의미를 가진 수전망후(守前忘後)는 근시안적 태도와 깊고 넓은 생각이 없는 경우에 쓸 수 있다면서 현재 일본과 아베 총리를 비유해 흥미롭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오른다'는 뜻의 미만점영(未滿漸盈)을 설명하면서 정권을 잡아 운영하는 이가 결코 버려서 안 될 마음가짐은 초심이라고 강조한다.

지은이가 찾았던, 일연의 숨결이 남아 있는 삼국유사의 역사 현장도 컬러 화보로 함께 실려있다. 22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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