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윤 시인
1961년 8월 영국 런던에서는 장소 이름을 따서 'A6사건'으로 불렸던 살인사건이 있었다. 연인관계였던 마이클과 발레리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마이클은 현장에서 숨졌고, 발레리는 하반신마비가 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유력한 용의자인 피터 알폰이 체포되었지만, 발레리는 범인식별절차에서 범인으로 제임스 핸래티를 지목했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은 제임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전문 변호인단이 구성되고, 그들은 조직적으로 증인이자 유일한 생존자였던 발레리를 비난했다. 제임스는 1962년 4월 4일에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후 발레리는 불구의 몸으로 세상의 비난을 피해 은둔생활을 했다. 여론은 제임스를 잘못된 수사와 증언으로 희생당한 '희생양'으로 몰아갔다. 사형집행 35년이 지난 후 재수사를 결정한 영국 사법부는 제임스 가족의 DNA를 분석하여 그가 진범임을 밝혔으나,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비판까지 수용하여 결국 2001년 그의 무덤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했고, 마침내 그가 진범임을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35년이 흐른 뒤 사랑하는 연인도 잃고, 세상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발레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이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건들을 목격하고 경험하며 살아간다. 증인이 되거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무심코 지나쳤던 상황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간혹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틀림없다'고 확신에 찬 사람을 만난다. 실상과 허상의 마법은 섣부른 마음의 주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눈'은 이미 그의 잣대로 짐작할 가능성이 높다. 그로인해 잘못된 선택과 오해로 본인은 물론 타인까지도 곤란하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A6사건에서 유일한 단서는 오직 발레리가 기억하고 있었던 범인의 목소리와 눈빛이 전부였다. 만약 본 대로만 진술했더라면 진범을 검거하기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한 여인의 오감은 물론, 육감까지 정확했다. 종종 어눌한 실상보다 치밀한 허상에 현혹되기가 쉽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던 진범은 예수 그리스도의 왼쪽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악담을 퍼붓던 이의 파렴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물체를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보인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시각(視角)이라고 한다. 개인별로 처한 입장과 여건에 따라 시각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 차이가 어우러져 형성된 것이 바로 사회성이다.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면 흔히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정면에서 마주친 어미 곰의 등 뒤에 가려진 새끼 곰 세 마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때론 보기 싫은 것도 봐야 하고, 믿기 싫은 것도 믿어야만 한다. 진실이라면 말이다. 누구나 목격자는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증인이 될 수는 없다. 증인은 그 누구도 진실 앞에서 침묵할 수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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