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거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갈 미래 세대

입력 2020-05-04 18:46:00 수정 2020-05-04 19:07:32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오늘은 어린이날! 초롱초롱한 어린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못한 '거지 같은 나라'에서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

기성(旣成)세대는 미래(未來)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서산대사는 '답설'(踏雪)이란 한시로 이를 명료하게 설파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지금 이 나라의 기성세대는 미래 세대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란 화두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거지 같은 나라일 확률이 매우 높다. 첫째, 나라 곳간은 텅텅 비고, 빚만 잔뜩 진 나라일 것이다. 중앙·지방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국가채무가 이달 초 819조원에 달해 국민 1인당 1천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국가채무가 192조원이나 늘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결손에 재정적자 보전을 위한 국채 발행이 대폭 늘어난 탓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나라 살림이 늘어날수록 국가채무는 증가하지만 문제는 '과속' 우려가 나올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문 정권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2%를 넘자 이제는 60%까지 가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 지출에 통일 비용까지 고려하면 국가채무 비율이 이미 100%를 넘는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경고다.

더욱이 정권이 나랏돈 퍼주기에 계속 올인할 것으로 보여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 80%, 100%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한 가정에 비유하면 가장(家長)인 아버지가 돈은 벌어오지 않고 "항구에 배만 들어오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빚을 끌어와 마구 쓰고만 있다. 가장을 말려야 할 어머니마저 같이 빚을 내 쓰는 데 정신이 없다. 얼마 안 가 가정 살림은 거덜나고 자식들은 빚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거지가 되기 십상이다.

둘째, 어느 상인이 말한 '거지 같은 경제'가 지속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성장률이 추락한 한국 경제는 급기야 제로(0) 성장도 아닌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했다. 경제 추락에 따른 국민 고통은 계속 커질 것이다.

셋째, 국가 안위조차 남에게 구걸하는 나라도 거지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핵무기 버튼을 가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깜이 행보에 가슴을 졸이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정부는 국방 예산을 뭉텅 자르고, 이에 군(軍)은 "문제 없다"고 하는 나라를 정상 국가라 할 수 있나.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민 사이에 거지 근성(根性)이 똬리를 트는 것이다. 나라에서 공짜로 주는 돈에 맛을 들인 국민, 포퓰리즘에 눈을 감고 노예가 된 국민, 밥그릇 싸움과 편 가르기에 빠진 국민, 스스로 일어서지 않고 남에게 기대는 국민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국민이 천민(賤民)으로 전락한 나라에 찬란한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동서고금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미래 세대들이 2020년을 산 기성세대에게 무슨 말을 할까. 거지 같은 나라를 만들어 물려줬다고 온갖 욕(辱)을 쏟아내지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우리가 나라를 망국으로 몰고 간 구한말의 기성세대를 욕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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