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양 임재양외과 원장
카뮈의 페스트를 꺼내어 다시 읽었다. 구구절절이 가슴을 쳤다. 수백만 명이 죽은 전쟁 역사를 알아도 가까운 친척 한 명의 죽음보다는 실감이 덜한 법이다.
두 번이나 읽은 소설인데도 이번에는 느낌이 남달랐다. 우리가 몇 달간 겪은 일들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재앙이나 "이 또한 지나간다"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과정은 항상 쉽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당혹스러움, 어느 정도 위험한지 공포감,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절망감, 끝난 후의 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감.
처음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다고 했을 때, 의사로서 모든 병을 안다고 자만하면서 단순 독감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주위를 안심시켰다.
2월 19일부터 슈퍼 전파자로 인해 대구 지역에서 폭발적인 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일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모두가 당황했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공문이 날아들었다. 너도나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나도 병원 문을 닫고 달려갔다. 의사가 하는 일은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고 감염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들어가 회진을 하고, 검체를 채취하는 일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의사 생활 40년째이고 온갖 험한 환자들을 본 외과의사지만 이건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본 환자 중에 20대 젊은이가 2명 있었다. 너무 무섭다고 떨고 있었다.
이건 당신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전파력이 강해서 이런 조치를 취한다고 안심시키고 아는 지식으로 여분의 시간을 천천히 보내고 병실을 나왔다. 잠시라도 안심하고 나보고 건강 조심하라는 말에 병실에 달려온 보람을 느꼈다.
아직 병은 진행 중이지만, 처음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국의 대응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량이 이 정도였는지 나조차 몰랐다.
사회적인 질병이 생기면 각 사회가 지닌 다양한 사회 역량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나는 이제까지 미국의 사회시스템을 아주 신봉하고 있었다. 의사로서 미국의 학문 세계는 따라잡기에 너무나 멀리 있는 대제국이었다. 의료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는 알았지만 저 정도인지는 몰랐다.
일본 또한 항상 나를 기죽이는 나라였다. 기초과학이나 원칙을 얘기할 때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의 진짜 모습을 이번에 보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우리가 훌쩍 컸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자 전 세계에 나가 있던 한국인들이 속속 귀국했다. 한국이 가장 안전하고, 사회시스템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사태 이후를 뉴노멀의 시대라고 말한다. 많은 전문가가 나와서 답은 없다고 겁을 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급격한 경제 팽창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과거와는 다른 뉴노멀이었다. 이제 돌아갈 곳을 잊고 있었던 노멀한 사회다. 우리가 아는 사회다. 각자 자기 일 성실히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다.
소설 페스트는 말한다. 페스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없어졌다. 공포, 갈등을 거치면서 결국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서로 연대함으로써 그 상황을 극복했다.
세균은 또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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