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만났던 경주 최씨 중앙종친회 최염 명예회장은 "경주 최부잣집 300여 년 부(富)의 원천은 혁명적 농업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11대 조인 국선 할아버지 때부터 큰 부를 일궜는데 모내기를 통해 쌀농사를 짓는 새로운 영농 기법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냇가에다 나무를 이용해 차단막을 설치한 뒤 물을 확보, 무논에 직파를 하는 방법이 아닌 모내기 기법을 통해 쌀농사를 지었는데 수확량이 직파 때보다 5, 6배나 늘어났다. 물을 다스리는 농업기술혁명이었다.
순식간에 국선 할아버지는 부농이 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부자 집안이자 경영학 책에도 등장하는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모든 성취 결과에는 의지, 그리고 능력이 합산돼 있다. 천수답(天水畓)으로는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으니 이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부터 최 부자 마음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물을 다스려 논으로 공급하는 기술적 능력도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완성됐다. 그 결과, 수백 년 전 최 부자는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 알곡을 수확해냈다.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을 보면 천수답이 떠오른다.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부처럼 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가 헛발질하기만 기다렸다. 국가든, 개인이든, 그 역량을 의지와 능력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판단한다면 통합당은 의지도, 능력도, 모두 천수답 농부 수준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헛발질만 한 번 크게 하면 '게임 끝'이라는 피동적이기 그지 없는 통합당의 의지 수준은 선거전이나 그 후나 달라진 게 없다. 야당의 개헌 저지선을 지켜주며 가까스로 여야 권력 균형을 맞춰낸 것은 대구경북(TK)을 비롯한 영남권의 전폭적 지지 덕분이었지만 선거가 끝나자 낯빛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영남을 탈피해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며 지지층에 대한 헌신 의무조차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빈약한 의지력은 지지층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다.
열렬한 지지를 보내준 광주전남과 전북에 대해 큰 고마움을 표시하며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호남으로 달려갔던 문재인 대통령은 전북을 방문, "여러분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을 용기있게 내놨다. 지지 기반에 대한 감사 언급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표현적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지지 기반에 대한 애착은 지지층 결집을 통해 수도권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여당은 전국 단위 선거 4연승의 금자탑을 이뤄냈다.
제1야당의 독자적 그림 그리기 능력을 보여주기보다 문재인 정부의 그림이 틀렸다고 딴지만 걸면 될 것이라는 제1야당의 능력 부재 현상은 또 어떠했나? 문재인 정부는 보수의 전유물이라 불렸던 애국심이라는 가치를 과감히 국정에 반영, 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등 보훈 강화 정책을 폈다.
문 대통령은 미국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최장수 핵심 참모로 두면서 이달 18일 기준으로 9번의 양자회담, 무려 24번의 정상 통화를 갖는 등 역대 어느 정부보다 미국과의 접촉점을 늘리면서 북한 편만 들고 한미동맹을 무시한다는 통합당의 공세를 돌려세웠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통합당이 그나마 남은 살림마저 모두 부수는 소리를 내며 또다시 집안싸움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 한 방에 보낸다"는 호기로움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았다. 의지도, 능력도 없는 천수답 농부가 나무 그늘에 앉아 부농의 꿈을 키우고 있다. 식구들 배곯는 소리가 농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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