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천천히 걸어 채마밭을 향하는데 / 食後徐行向菜田(식후서행향채전)
아내는 뒤따르고 아이는 앞서 가네 / 病妻隨後稚兒先(병처수후치아선)
인생의 이 즐거움에 더 바랄 게 없는 것을 / 人生此樂餘無願(인생차락여무원)
그 누가 아등바등하며 헛 세월을 보낼 건가 / 誰自勞勞送百年(수자로로송백년)
조선후기의 시인 천파(天坡) 오숙(吳䎘·1592-1634)의 작품이다. 보다시피 작품 속의 가족들은 밥을 먹은 뒤에 일렬 종대로 천천히 걸어 채마밭에 간다. 이 대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천천히' 가 아닐까 싶다. 밭에 산돼지가 나타나는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도, 당장 다급하게 해결해야 할 발등의 불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들은 유유자적하게 채마밭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채마밭에 가서 무얼하려고? 작품 속에는 그에 대한 답변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판에 나가는 농부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왜 그러냐고? 가족들과 함께 천천히 채마밭에 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말에도 그 점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길지도 않는 인생을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면서 허둥지둥 살 필요가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 주말 농장에 놀러가는 기분으로 채마밭을 향하여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분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요즈음 내가 느끼는 기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싶다.
지난 2월 말에 퇴임을 하고 강정보가 있는 강정마을에다 까치둥지만한 연구실을 꾸렸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주말 농장이 있어서 손바닥만한 텃밭을 만들고, 13가지의 씨앗들을 뿌렸다. 한 열흘 동안 부지런히 물을 주었더니, 세상에, 콩심은 데 콩이, 팥심은 데 팥이 총궐기하여 우지끈 돋아나기 시작했다. 콩을 심어도 좀처럼 콩이 나지 않는 세상에서 콩을 심었다고 아니 글쎄 진짜로 콩이 돋아나다니 이게 바로 기적이다 싶다. 요즈음 나는 "동네 사람들요, 이것 좀 보소. 여기 콩을 심었더니, 세상에, 진짜로 콩이 났심더"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으로 이 놀라운 기적의 현장으로 휘파람을 불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좀처럼 서두르지 않는 섬진강 강가에서/ 그리움의 세포마다 마음귀를 열어놓고// 듣는다//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마음아" 우은숙 시인의 시조 '마음아 천천히 걸어라'의 일부다. 그래 맞다. 이제부터는 비슬산 꼭대기의 흰구름을 우두커니 쳐다보면서 천천히 걷자꾸나,우왕좌왕에다 허둥지둥했던 나의 마음아.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