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종가에 시집을 왔고, 1949년 옥살이 남편과 마지막 면회 이후 헤어진 종부는 종손인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다가 54년 만인 2003년 2월, 금강산에서 백발로 다시 만나 기약없는 이별을 나눴다. 그해 종가에서는 종전의 자정 제사를 저녁 8시로 옮기고 제사상 상어고기도 고등어로 바꿨다…."
경북에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200곳 넘는 종가(宗家)가 있다. 흔히 종가는 자손 대대로 받드는 불천위 제사를 지내고, 서원에 모셔진 인물이 있고, 보통 10대(代) 이상 계승되고, 종택 보유 등의 조건을 갖춘 집을 일컫는다. 그런 만큼 후손의 자긍심도 크지만 오랜 세월 지킨 옛 풍습으로 갈수록 종가 유지는 난제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러니 옛 방식을 시대에 맞게 바꿔야 했다. 54년 만에 백발의 남편을 만나 다시 헤어진 경북의 한 노(老)종부의 슬픈 사연처럼 종가를 지키는 변화는 마땅했다. 한밤 제사는 오늘날 삶과 어울리지 않아 시간을 앞당겼고, 종전에 쓰던 어물에 중금속 유해물질이 함유됐다는 보도에 계속 고집할 수도 없었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이처럼 변화가 더딘 종가이지만 시대에 따른 변신은 마땅했다. 세상살이에서 때에 맞추고 어울리는 시의(時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백 년 흐르도록 고유한 문화를 잇는 종가조차 오늘날 지키기 어려운 옛날 방식을 과감히 고치고 바꾸는 요즘이다. 바로 그런 사례를 경북 곳곳에 남은 종가의 변화된 삶의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쉼없는 흐름을 읽고 적응하는 경북이고, 그 경북과 뿌리를 함께하는 대구다. 어느 곳보다 독특한 대구경북에는 강한 유대감과 응집력 등 배울 가치가 널렸다. 특히 코로나19의 최대 피해 속 고통스러운 날에 빛난 위기 대응 능력은 세계가 이미 평가했다. 처음 겪는 괴질과의 사투에서 첫길을 낸 대구경북이다.
이는 하루아침에 나올 수 없다. 오랜 종가의 가려진 자산처럼 대구경북 사람 가슴에 새겨진 위기 극복의 유전 인자 덕분이다. 변화를 따르고, 이끄는 인자 또한 같다. 새 날갯짓처럼 두 날개는 절대적이다. 이틀 앞 총선도 그렇다. 일방적 표 찍기는 대구경북 비상(飛翔)에도 불리하고 변화를 따르고 코로나 극복에서 보인 첫길 개척 행적과도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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