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눈을 맞추면 팔립니다

입력 2020-04-08 12:05:29

아이들이 보는 광고라면 아이들의 언어를 써야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아이들이 보는 광고라면 아이들의 언어를 써야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왜 팔리지 않을까? 오늘도 누군가는 치킨집을 창업하고 곧 망할 예정이다. 내일은 누군가 카페를 열고 곧 망할 예정이다. 시작부터 망할 생각을 하면 너무 비참하다. 도대체 왜 팔리지 않을까? 마음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 회사를 창업하고 이런 광고주분들을 많이 만났다. 본인의 마음이 너무 높아 고객의 마음과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분들의 특징은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아, 우리 제품이 이만큼 좋은데 왜 몰라주지?' '사람들은 정말 바보야. 이렇게 좋은 제품을 두고 사지 않으니'라고 생각한다. 고객과 눈 맞을 리가 없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객과 눈을 맞추기는커녕 더 높은 곳을 보고 있다. 눈이 맞지 않는데 마음이 동할 리가 없다. 말 그대로 동상이몽이다.

동상이몽 정신은 사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관공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교육청 광고를 떠올려 보자.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나? 잔디밭 위에서 남녀 학생이 책을 읽으며 서로 미소 짓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완벽한 거짓말이다. 이건 학생들의 모습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생은 이렇게 자라야 해!'라는 규칙을 정해주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은 이런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에 고개가 돌아갈 뿐이다. 이렇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모습 때문에 많은 공익 광고들이 실패한다. 교화하려 하고 가르치려는 순간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인천시 교육청에서 의뢰가 왔다. '인재의 천국'이라는 카피가 기억에 남으셨는지 다행히도 다른 일까지 맡겨주셨다. 인천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집중했다. 학교에 다니며 아이들이 가장 잘 배워야 하는 것이 뭘까 고민했다. 그것은 수능에 나오는 국·영·수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공부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공부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봤다. 그때 비로소 아이들의 눈이 가장 빛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기 싫은 공부로 야자를 채우면 아이들의 눈이 얼마나 흐리멍덩할까?

필자가 좋아하는 영어 중에 'enlightening'이라는 단어가 있다.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로 '계몽적인, 밝혀주는'이라는 뜻이다. 굉장히 교육적인 단어라고 생각하는데 '밝혀주는'이라는 뜻이 참 좋다. 공부의 즐거움이 잘 녹여져 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갈 때, 어떤 문제에 관한 통찰을 얻었을 때 깜깜했던 눈앞에 불이 켜진 것처럼 기쁘다. '눈이 반짝인다'. '눈에 불이 켜진다'라는 아이디어를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싶었다.

톤 앤드 매너는 소위 아이들이 말하는 병맛 컨셉으로 갔다. 아이들은 진지한 교육청 광고에 고개를 돌리며 그런 콘텐츠는 소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이렇다. 길바닥에 떨어진 '인천 교육'이라는 책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마치 책을 열어보면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학생은 책을 펼쳐보고 그 속에 빠져든다. 책에서 얼굴을 떼니 눈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두웠던 세상이 너무 밝아 보이는 것이다. 오른쪽을 봐도 빛이 나고 왼쪽을 봐도 빛이 난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니 눈에서 나오는 불빛이 밤하늘까지 밝힌다. 그러면서 카피가 나온다. '교육이 인천을 더 빛나게'

책을 읽고 눈에서 빛이 발사되는 모습. 빅아이디어연구소
책을 읽고 눈에서 빛이 발사되는 모습. 빅아이디어연구소

아마 눈에서 빛이 나오는 교육청 광고는 인천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인천시 교육청과 한 작업을 돌이켜보면 공통점이 있다. '인재의 천국'은 줄임말을 활용했다. 교육이 인천을 더 빛나게는 눈에서 빛이 나오는 걸 찍었다. 둘 다 어른 취향이 아니라 아이들의 취향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교육청 광고가 없는 이유는 어른들의 취향에 맞췄기 때문이다. 줄임말 역시 요즘 아이들이 워낙 많은 말을 줄여 쓰기 때문에 쓴 카피이다. 눈에서 불이 나오는 설정도 지극히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어른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어른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광고와 심리 상담은 닮았다. 한 심리 상담가의 말이 기억난다. "제 역할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고민을 잘 들어주기만 해도 내담자분들은 많이 좋아하세요" 광고도 마찬가지다. 말하기인 것 같지만 사실 광고는 듣기이다. 우리가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힌트를 주는 것이다. 팔리는 광고를 하고 싶다면 키를 낮추어라. 그리고 바짝 엎드려 고객과 눈 맞춤하라.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눈동자를 바라보아라. 마케팅은 거기서 시작된다.

김종섭 소장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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