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나의 삶]화가 곽호철

입력 2020-04-12 06:30:00

화가 곽호철이 그의 아틀리에에서 올해 개인전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화가 곽호철이 그의 아틀리에에서 올해 개인전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곽호철 작
곽호철 작 '성밖 숲'

삶의 밑바닥에 한 번 내동댕이쳐진 사람이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게 되면 그 사람은 삶의 태도나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오롯해지는 법이다. 서양화가 곽호철(55)의 예술과 삶이 그러하다.

그는 미술부 활동이 강세였던 왜관 순심중고교시절 고교 3년 때인 1984년 가을 홍익대 미술대학 주최 전국실기대회에서 서양화 부문 1위를 차지할 만큼 소질이 탁월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 경북대 미술대학(85학번) 서양화과로 진학했다. 그의 쌍둥이 형도 동 대학 조소과에 나란히 입학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2009년 늦가을 그는 개인회생을 신청해야만 했다. 이후 생활인으로서 대리운전, 청소,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이 기간에 그는 화실을 십 수차례 옮겨가며 작업해야 했다. 이때 관리 소홀로 곰팡이가 생겨나 많은 작품들을 태워버리기도 했다. 2015년 개인회생에서 벗어나면서, 곽호철은 휴대전화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날짜를 기록해 두고 있다. 가족의 사랑과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로에 자리한 한 아파트(24평)에 온전히 '곽호철 아틀리에'란 명패를 붙이고 작업한 지는 2017년부터이다.

곽호철의 작품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개의 축은 '시간'과 '가족'이다.

1991년 대학시절에 대구 5개 대학 미대생 200여명이 참가한 연합전을 시민회관(지금의 콘서트하우스)에서 주관했고, 1998년 대구은행 본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언뜻 그림인 듯 사진인 듯 그 경계가 모호한 게 특징이다. 이 특징은 바로 그만의 독창적 제작방법에서 비롯된 시각적 현상이다.

곽호철은 가장 안정된 느낌을 주는 가로2x세로1의 비율을 지닌 프레임을 즐겨 사용한다. 이 프레임을 전제로 그는 야외 스케치를 나가 사진을 촬영한 후 컴퓨터를 이용해 평면에서 작업하는 것처럼 구도를 바꾸거나 형태, 또는 색감을 생략하거나 강조해 전혀 새로운 느낌의 화면을 재구성한다.

"적어도 나의 작업에 있어서 컴퓨터 화면은 캔버스이고 붓은 컴퓨터 마우스가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때 물체와 물체간 거리를 흐리게 색조 처리를 하거나 아예 그 공간감을 강조하는, 일명 동양화 기법 중 하나인 '공기 원근법'을 도입해 화면을 재구성한 후 이를 천에 프린트한다.

이후 수작업을 통해 붓이나 나이프로 화면을 터치하거나 긁어내고, 자연적인 빛의 처리를 위해 화면 이곳저곳에 눈부심을 표현하는 원도 가미함으로써 원래 화면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느낌을 지닌 화면을 재창출해 낸다. 또는 화면 구석이나 가장자리에 작은 네모 형태의 요소를 첨가해 짧은 시간의 흐름을 조형언어로 나타내거나, 전체 화면을 색감조절로 서너 등분으로 분할함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흐름을 한 화폭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이런 방식들은 '삶의 시간을 기록하다'는 모토로 2018년까지 지속해왔던 작업들입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그림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가족'이란 상징은 연리지를 묘사한 나무 그림들과 장수풍뎅이, 장수하늘소, 사슴벌레와 무당벌레를 그린 작품들이다. 전자는 가족애를 상징하고 후자는 부모와 자식을 상징한다.

곽호철 그림의 또 다른 경향은 대학시절 자동차 보닛에 맺힌 물방울에서 착상한 '곽 아트(Kwak Art) 기법'의 작품들이다. 특허까지 따낸 이 기법의 작품을 보면 평면화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조작품처럼 보이는 특성이 있다. 또 한참 들여다보면 매직아이처럼 볼록이 오목으로, 오목이 볼록으로 바뀌는 착시현상도 유도하고 있다.

'곽 아트 기법'은 우선 톱밥을 압축시켜 만든 합판(MDF)에 방수액을 덧바르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 조형 언어적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어 다양한 색감을 섞은 래커를 옆면에서 뿌려주면 화면에 색과 명암이 드러나게 되는 방식이다. 이때 조형언어를 표현하는 주된 마티에르는 '래커'이다.

이후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 마른 수건을 화면에 덮어 물기를 제거하면 수분은 수건에 스며들고 도료는 화면에 장착하게 된다. 이러고 난 후 다시 시너와 나이프 등으로 긁거나 '형태 지움'을 통해 최종 작품으로 마무리를 하게 된다.

작가는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이 기법의 소품들을 수십 장에 수백 장을 제작, 전시장 공간에 가로 또는 세로의 다양한 3차원적인 문양의 설치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이들 소품작품에 그려진 내용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것들이었다.

"그림은 소통입니다. 화가도 직업인이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의무와 책임과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그림이죠. 그림을 통해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술은 거창하기보다 일상의 미학입니다."

곽호철은 이런 예술관에 따라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위해 지역 미술인들과 연대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올해로 창립 45년째를 맞은 왜관 순심중고등학교 미술부 동문들의 모임인 맥심회 회장과 칠곡미술협회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들은 지역사회에서 벽화나 미술축제, 전시 등을 공동 기획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올 2월에는 그가 중심이 되어 그림을 통해 소통의 다리가 되어보자는 취지에서 'C-Bridge'라는 단체도 결성했다. C는 소통을 의미하는 'Communication'의 약자다.

2020년 올해 곽호철은 12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명은 'History-남기고 지우다'가 주제다. 이 전시에서는 300호짜리 대작으로 세월호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덧붙여 최근 그의 그림은 완성작 표면에 크리스털 레진을 살짝 덧씌워 작품의 보존성을 높이고 있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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