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꽃은 피건만 사람이 없다

입력 2020-04-08 09:50:39 수정 2020-04-08 15:40:29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동진 스님 망월사 주지· 백련차문화원장

하늘에 뜬 달이 둥글고 밝다. 보름이 가까워진 것이다. 다정헌 정자에서 바라보는 달빛은 하늘과 낙화담을 비추고 너와 나의 찻잔에 담기고 너와 나의 마음에 담긴다. 경포대나 해운대의 달도 장관이지만 망월 누각에서 완상하는 6개의 달은 한결 심원하다. 그 뜻은 경허 선사의 열반송에 잘 드러나 있다.

心月孤圓(심월고원) 마음 달이 홀로 둥글어

光吞萬象(광탄만상) 그 광명이 삼라만상을 삼키었네

光境俱忘(광경구망) 광명과 경계를 모두 잊으면

復是何物(부시하물) 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이 시를 생각하며 계절 따라 찻잔에 작설차를 부어 놓고 하늘의 달을 담아 달빛 차회를 즐기다 보면 찻잔도 환해지고 바라보는 주인도 객도 그 마음이 둥글어지고 밝아진다.

사람의 마음은 본시 둥글고 밝았다. 때도 묻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을 살다 보니 부와 명예와 권력과 사랑에 의해 둥근 마음이 모가 난다. 이런저런 상처를 입어 밝은 마음은 어두워지고 오염이 되었다.

하늘의 둥글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 달을 본래대로 회복하라는 뜻으로 내가 사는 암자를 망월(望月)이라고 했나 보다. 심월(心月)이 고원하니 어찌 고통 받고 어리석게만 살 수 있으리오. 자기 관념에만 빠지지 말고 남을 인정하며 둥근 인성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전쟁 같은 세상의 환란에도 자연의 순환과 주기는 변함이 없다. 무한한 우주는 중력을 통해 변화와 생명을 탄생시키고 소멸하게 한다. 물질은 중력의 영향으로 밀도가 높은 곳으로 모여들어 별과 은하를 만들었고 높고 낮음을 나타냈다. 꽃이 씨앗을 남기듯 인간은 자신의 선과 악의 행위로 행불행을 만든다.

코로나 탓에 천지에 꽃은 피건만 영춘(迎春)하자는 사람이 없다. 저녁은 있건만 잠들지 못한다. 집을 나서는 식구들의 뒷모습은 불안하다. 서로의 얼굴을 마음껏 바라볼 수도 없다. 멀찍이 떨어져야만 하고 부고가 와도 조문할 수 없다. 어둡고 무거운 이 시절은 언제까질까?

따뜻한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는 오늘. 모두가 아픈 오늘. 병실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거짓말처럼 끝날 일이라 믿으며, 그렇게 희망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하자. 죽음이 삶이 된 이 시간에도 돌아온 계절은 꽃피고 물이 흐른다. 예전처럼 마주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손잡고 걸으며 따뜻한 만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19로 초·중·고교의 개학이 연기됐고, 외출·산책·여행·공연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 정지되고 사라졌다.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창살 없는 감옥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점령되어 한계에 다다른다.

역설적이지만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코로나19로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서 지구가 깨끗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세에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할 때는 격리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에 있는 별장에 10여 명이 모였다. 2주간 머물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썰을 풀었다. 그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전염병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나눈 대화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종교인들은 이기적 집회를 보류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확산 방역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국민들의 일상을 이젠 희망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말했던 유마 거사의 대승 정신은 현재 상황에서 종교가 나아갈 방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음에 치유가 필요하다. 모두의 안부를 묻는다. 다들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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