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선거는 중간고사 시간이다

입력 2020-04-05 16:06:44 수정 2020-04-06 09:51:31

노동일 경희대 교수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3일 대구 서구 상중이동 거리에 21대 국회의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이번 선거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까지 선거권이 부여됐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4·15 총선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3일 대구 서구 상중이동 거리에 21대 국회의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이번 선거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까지 선거권이 부여됐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기회

사실상 선거로 평가 외에는 없어

정책 기조 원하면 집권 세력 선택

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 선택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학생이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성적에 대한 두려움이 큰 이유일 것이다. 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선생 된 입장에서도 시험이 썩 달가운 건 아니다. 학생들의 답안을 보면서 열심히 가르친 결과가 이런 정도인지 나의 능력을 반성하게 된다. 보다 직접적 이유는 시험 문제에 있다. 객관식 문제는 출제가 번거롭지만 주관식 문제는 채점이 힘들다.

모두가 반기지 않는 시험이어도 교육과정에서 시험을 통한 평가는 필수적이다. 교육학에서 평가는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교육과정과 평가의 관계에 관하여 랠프 타일러(Ralph W. Tyler)는 "의도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산출 간의 비교"라고 정의한다. 처음 설정한 목표와 실제 얻어진 결과를 비교하여 교육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것이 평가이다. 최우수(A)부터 낙제(F)까지 과거의 성취를 평가하여 미래의 질적 향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시험을 중간과 기말로 나누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거 역시 시험과 유사하다. 선거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평가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대표성의 부여, 평가와 선택, 정책 결정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한다. 평가와 선택은 특히 중요하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선거에서 국민에게 다양한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선택받는다.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이 제시한 목표와 성취 결과를 비교 평가하여야 한다. 평가를 통해 같은 선택을 할지 다른 선택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은 정권 담당자들이 흡족할 만한 성과를 올렸는지 검증하고 평가해야 한다. 잘했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상을, 잘못했다면 기회를 박탈하는 벌을 과해야 한다.

미국은 선거의 평가 기능이 비교적 확실하게 작동한다. 4년의 대통령 임기 2년 차에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일부에 대한 중간 선거가 치러진다. 자연스레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중간 평가가 이루어진다. 중간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국정 운영의 기조를 유지하지만, 패배 시 국정 운영의 기조 변화가 뒤따른다. 우리는 총선의 중간 평가적 성격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4년 임기의 국회의원 선거가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집권당이 총선을 통해 국정 운영 방향을 새롭게 점검할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다. 이번 21대 총선은 중간 평가라는 총선의 성격에 적합한 선거이다. 2017년 5월 출범한 현 정부 임기 3년 차를 지난 마당이다. 지난 3년의 국정 운영 성과를 검증하고 평가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미래의 국정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집권 세력이 향후 2년 동안 국정 운영 기조를 유지할지 변경할지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선거의 형식은 객관식이지만 내용은 주관식이다. 채점자 나름대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각 분야에서 꼼꼼하고 세밀한 채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집권당이 내민 답안지를 예리한 눈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권력에서 소외된 야당보다 국민의 위임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집권 세력이 주된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단순한 정파적 시각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의 당연한 요청이다. 선거법 개정 등 집권 세력이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권력을 운용해 온 정치 기조,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주 52시간제·탈원전 등 경제 정책 기조, 한미·한중·한일 관계 등에서 드러난 외교 정책 기조, 공수처 설치와 검찰 개혁 등을 내세운 사회 정책 기조 등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려진 선거의 평가적 기능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간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원하면 집권 세력을, 바꾸기를 바라면 야당 세력을 선택하면 된다. 진영 논리에 치우쳐 허술한 답안지에 합격점을 매기면 안 된다. 그 반대 역시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채점자가 중간고사에서 까다롭게 점수를 매겨야 학생이 기말고사를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 집권 세력이 성적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해야 한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선거 외에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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