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자유기고가
인류의 대부분의 삶은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닌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하루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굶어야 했으며 기후변화나 재난이 닥쳐 먹거리를 구할 수 없으면 꼼짝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인간에게 먹거리는 늘 중요했다.
인류의 생존방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졌다. 한 갈래는 초원으로 가 유목민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갈래는 강 하류 퇴적지에 정착해 농사짓는 정주민이 되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불균형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척박한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거칠게 살았던 자들은 생산력이 풍부한 지역을 약탈하였고 심지어 정복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인류는 끊임없는 이동과 전쟁, 그리고 지배계층의 교체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가 되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한 대이동은 문명과 세계사를 바꾸기도 했다.
목초지를 마르게 한 기후변화는 중앙아시아의 훈족을 유럽으로 이동하게 만들었고 훈족의 압박에 밀린 게르만족은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중세 유럽시대를 열었다. 또,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시작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아메리카로 이동한 청교도인들, 세계 각국으로 이주한 화교들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인류의 본능을 느끼게 만든다.
먹고 살기 위해 이동하는 인류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나라도 달라진 건 없는 듯하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지역을 이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더욱 더 집중되고, 그 외의 많은 지역들은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들은 인구 유입을 위해 정책을 발굴하고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전남 해남군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전국 최초로 7년 연속 합계출산율이 1위인 도시가 되었으나 인구는 매년 계속 줄고 있다. 이에 반해 경기도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 수준이지만 인구는 매년 계속 늘어 1천3백만 명이 훌쩍 넘었다. 국민 4명 중 1명은 경기도민인 셈인데 인구유입을 위한 재정 인센티브의 한계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정치인들은 예산 확보를 공언하고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수많은 공약을 내건다. 주민들도 지역 출신이 장·차관이 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고위직 승진 누락 시에는 이를 지역차별로 보고 분노를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자기 지역 출신이 출세해야 예산도 많이 가져오고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아닌 믿음이 기저에 깔려서 생긴 듯하다.
과거 고도의 압축 성장 속에서 지역 소외는 못 가진 서러움보다 더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었을까? 한 때 자기 고향에 4년제 대학교를 유치하고 공설운동장을 건립하는 것은 지역 유력 정치인들의 숙명이었다. 뿐만 아니다. 인프라만이 지역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신념은 고추 말리는 공항, 철로 녹슨 경전철, 텅빈 국가산단 등으로 대표되는 표(票)퓰리즘을 낳았다.
마강래 교수가 지적했듯이 많은 도시들은 장밋빛 인구 증가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해 도시계획을 수립하였다. 하지만 인구는 줄고 도시의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빈집은 늘고 있다. 과거 일본처럼 대도시 인근 신도시 아파트가 텅텅 빌 수 있다는 두려움은 도시의 집중과 압축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러한 논리는 확실한 곳만 투자한다는 신념을 낳아 부촌의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했다.
일자리와 계층상승의 기회를 얻기 위한 이동은 인구와 산업의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화시켰으며 좋은 교육환경, 안정된 치안, 쾌적한 거주환경을 위해, 발로 이동한 결과물들은 마태효과처럼 국토의 균형개발을 저해하고 도시 내 부촌과 빈촌의 그 격차를 더 커지게 만들었다.
이런 의미에서 다산 정약용이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자식에게 남긴 유언은 지금도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후면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모든 후보의 공약을 다 보지 못했지만 인프라 확충, 기업유치, 교육환경 개선 등의 내용이 그 주를 이루는 듯하다. 그리고 지방정부들은 양질의 공공재를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지만 유권자의 최우선 선호인 양질의 일자리, 명문 학군, 그리고 우수한 문화인프라를 다 갖춘 지방도시는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어쩔 수 없이 유권자는 자기 거주지를 이사로서 선택하는 '발로 하는 투표'로 그들의 선호를 나타낸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는 4년마다 열리지만 유권자의 발로 하는 투표는 이론상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인구와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각종 재정지원금과 보조금 관련 먹튀 문제는 언제나 논란거리다. 또,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관련 각종 지원금도 그 기준이나 혜택 범위가 지역이나 업종별로 다를 경우 '발로 하는 투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지방분권은 공정하게 나누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철저한 국토균형개발에 입각하여 차별화된 각 지방들의 성장만이 분권과 균형이라는 헌법정신에 부합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발로 하는 투표'를 이길 수 있는 좋은 정책은 만들어 질까?
이번 4월 15일, 20대 총선에서 뽑힐 300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기대해 본다.
이상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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