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피해자에 '남자 화장실 속 나체 모습 촬영' 등 강요, 텔레그램 탈퇴하면 "가족 죽인다" 위협
'박사' 조주빈, 피해자에 "경찰 신고하고 경찰서 내부 사진 찍어 달라"며 수사기관 농락도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공유 단체 채팅방인 'N번방'의 운영자, 닉네임 '갓갓'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인면수심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을 '피싸개'(생리를 한다는 뜻)로 부르는가 하면, "누구 하나 죽을 법 한데 안 죽었다"는 등 말을 서슴지 않았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지난해 2월 무렵부터 닉네임 '갓갓'이 운영하던 1~8번방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단체 채팅방을 중심으로 미성년자 등 성착취 동영상과 음란물이 대거 유포된 사건을 이른다.
채팅방에서 불법 촬영 영상을 유상 구매한 인물은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나, 관련 채팅방에 입장한 이들을 포함하면 26만명이 범죄에 가담했을 것으로 경찰, 여성단체 등은 보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은 '갓갓'의 'N번방'과 '박사'의 '박사방'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N번방 사건 시초 갓갓, "(수사해야 할)경찰은 맨날 쳐놀기나 하고"
갓갓은 지난해 2월부터 9월까지 8개의 텔레그램방(1~8번방)을 만들고 운영한, 관련 범죄의 시초격 인물로 지목된다.
갓갓은 트위터에서 피해자를 물색했다. 자신의 성적 행위를 인증하는 이른바 '일탈계'(익명성에 기대어 평소 하지 못하는 일탈을 하는 온라인 계정) 주인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 "당신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무단 유포되고 있다"고 위협했다.
갓갓은 이 메시지에 트위터 로그인 페이지로 위장한 가짜 웹페이지 링크를 담아 보냈다. 이에 속은 사람들이 트위터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갓갓은 이를 입수했다.
이후 경찰을 사칭, "당신은 음란물 유포 혐의로 조사받을 것"이라며 "얼굴 등이 포함된 신체사진을 보내면 조사받지 않게 돕겠다"고 속였다. 계정 소유자가 개인정보 입력을 주저하거나 진위 여부를 의심하면 갓갓은 앞서 얻은 개인정보를 들며 협박해 사진과 영상을 받아냈다. 피해자들은 익명성에 기대어 행한 행동이 더 이상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공포심을 느껴 갓갓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이 운영한 방은 1~8번 등 8개로 파악됐다. 갓갓은 방마다 피해자 서너명에게 받아낸 영상을 유포했다. 모두 30명 안팎의 피해자가 나왔다. 각 방에는 300~700명선의 이용자가 입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은 갖은 수치스러운 요구를 일삼으며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억압해 왔다.
영상을 제공한 피해자는 청소년이 대부분으로, 이들은 지시에 따라 개처럼 짖거나, 남성 공중화장실에서 나체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거나,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위행위를 했다. 갓갓은 여성 중학생을 숙박업소에 가둔 뒤 성인 남성을 시켜 강제로 성관계하는 영상을 실시간 공유하기도 했다.
갓갓 등은 피해 여성을 흔히 '피싸개'라고 불렀다. 갓갓은 한 파생 채팅방에서 "이 정도 되면 누구 하나 죽는 애 나와야 하는데 죽었다는 소리 못 들어봄ㅋ 한 명만 죽어도 본보기 오질 텐데 경찰들은 매일 쳐놀기만 하고" 등 조롱하기도 했다.
텔레그램은 '음란물 유포' 신고가 누적되는 대화방을 차단해 왔다. 이 때문에 N번방을 신고하려 해당 방에 잡입하는 피해자, 일반인들이 잇따랐다. 그러나 N번방 관리자들은 '대피소' 등 파생방을 운영하며 기존 방이 폭파되면 '대피소'에 새로운 방 링크를 공유해 초대하는 식으로 제재를 회피했다.
갓갓은 지난해 초부터 트위터 등 SNS에서 N번방 링크를 5만원 이하 금액으로 판매해 왔다. 링크를 더 비싼 값에 되팔이하는 이들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내부 영상이 유출되기도 했다. 그러다 같은 해 7월 '고담방'이라는 파생 채팅방에 '갓갓'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나 N번방 링크를 무상 유포하기 시작했다.
고담방은 닉네임 '와치맨', 일명 '감시자'가 운영하던 파생방이다. 와치맨이 운영한 고담방은 영상, 사진 업로드 기능을 제한한 채 N번방과 '박사방' 등의 링크를 공유하고 불법 성인 사이트, 성인 음란물 관련 대화만 할 수 있게 해 일종의 홍보 매개체 역할을 했다. 지난해 7월 기준 고담방 이용자는 4천여 명으로 알려졌다.
고담방을 운영한 '와치맨'은 '갓갓'이 N번방 운영을 중단하고 잠적한 뒤 각 대화방을 넘겨받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와치맨은 38세 회사원으로, 지난해 9월 경기남부경찰청에 체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N번방을 수사 중이던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N번방에 아동·청소년이 나오는 영상 등 불법음란물 9천여 건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1심 재판 중이며 내달 9일 선고 재판이 예정됐다. 검찰은 와치맨에 대해 징역 3년6월을 구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은 아직 수사당국을 피해 도주 중이다. 경북경찰청은 갓갓이 주로 이용한 IP주소(컴퓨터 등 인터넷 사용 기기의 고유 주소)를 특정해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박사방' 조주빈, 피해자에 "변기물 먹으라" 지시도
닉네임 '박사' 조주빈(25)의 구속으로 주목받은 '박사방' 역시 N번방 파생방 범죄의 주축이다.
조주빈은 인하공업전문대학 정보통신과 소속이자 학내 학보사 편집장 출신으로, 2019년 9월 갓갓의 N번방이 폐쇄될 무렵 '고담방'에 등장해 입지를 키웠다.
'박사'는 자신이 만든 '맛보기방' 링크를 고담방에 유포하고, 더 많은 자료를 원하면 '박사방' 입장권을 구입하라고 유도했다. 그를 견제하는 이들이 박사를 강퇴하거나 박사방에 입장해 훼방을 놓으면 박사는 그들의 신상을 털어 공개했다. 그에 의해 신상이 공개된 한 채팅방 이용자가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기도 했다.
박사는 N번방과 비슷한 수법으로 채팅방을 운영하되, 자신이 제공하는 불법 촬영물의 수위에 따라 입장료를 달리한 3개의 채팅방을 뒀다.

박사는 가장 비싼 '최상위 등급방'(입장료 150만원)에 '실시간 노예방으로 이루어진 최강의 방'이라는 소개문을 내걸었다. 이 방은 텔레그램보다 보안이 뛰어나다 알려진 위커(본사는 미 샌프란시스코)에 개설해 운영했다.
또 텔레그램 '고액후원자방'(60만원)에는 '양질의 자료를 주기적으로 관리해 수질이 유지되는 방', '하드방'(25만원)에는 '한국형 스너프 제작 및 공유방'이라는 소개를 각각 걸었다. 비용은 계좌번호 추적을 피해 암호화폐 등으로 받았다.
이 방들에 입장한 유료 회원이 총 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는 모르는 여성에게 카카오톡 등으로 메시지를 보낸 뒤 '나체 사진을 보내면 돈을 주겠다'고 속여 사진과 개인정보를 받고는, 이를 협박 도구로 삼았다.
이후 박사는 닉네임 '폭스밤'이라는 허위 고객 계정을 만들어 피해자를 상대로 이중 행세를 했다. 피해자를 폭스밤(박사)과 단 2명만 참여하는 대화방에 초대해 "폭스밤 요구에 응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화방은 등록하는 대화나 사진 등이 3초 만에 자동 삭제되도록 했다. 폭스밤이 피해자에게 사진과 영상을 요구하면 피해자는 '자동 삭제'에 그나마 안도하며 요구에 응했다.
박사는 이런 채팅방에서 '폭스밤'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몸에 '노예', '박사' 등 글씨를 쓰라", "나체로 물구나무를 서라", "신체 특정 부위에 애벌레를 둬라" 등 지시를 했다. 변기물을 먹도록 하거나 화장실 배수구를 핥도록 시키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주저하면 박사는 미리 구한 피해자 SNS 친구 목록을 들이대며 "당신 친구와 가족들 이름, 연락처, 주소를 모두 안다. 나체 사진을 친구와 가족에게 보내고 '당신이 성매매하려 했다'고 알리겠다. 집으로 직원들을 보내 죽이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았다.
박사는 이렇게 확보한 영상 등을 그리고는 즉시 저장하거나 다른 대화방에 유포했다. 범행은 서울, 인천, 강원, 경기 등 지역에 무관하게 이뤄졌고 피해 여성은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총 74명으로 조사됐다.
각 채팅방 참가자들은 영상을 보며 심한 성희롱 발언을 했고, 채팅방 내 공개된 피해자 주소를 들어 집단 성폭행 계획을 암시하기도 했다.
박사에게 "영상을 더 달라"며 그를 떠받드는 추종자도 잇따랐다. 이 같은 인기(?)에 박사가 운영하던 최상위 등급방은 지난해 11월쯤 입장료가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급등했다.
박사는 이 같은 채팅방 참여자 중 자신의 지시를 잘 따르는 이른바 '직원'들에게 피해자 성폭행 지시, 자금세탁, 성착취물 유포, 대화방 운영 등을 맡겼다. 신변 노출을 막고자 평소 직원들과는 텔레그램으로만 대화했다.
공범 중 사회복무요원들은 구청 등에서 피해자들과 유료 회원들의 신상을 캐내 협박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지난 18일 박사방을 운영한 혐의로 '박사' 조 씨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6명 안팎의 피해자가 경찰에 '박사방'을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당초 자신이 박사라는 것을 부정하고 조사 받는 도중 자해를 시도하거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행세하기도 했다. 이후 조 씨는 자신이 박사라고 인정했다.
경찰은 24일 오후 조 씨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전날 SBS 보도로 조 씨 신상이 이미 공개된 바 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조 씨는 '박사방' 운영 도중에도 학보사에서 편집장, 기자 활동을 하며 대학과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 왔다. 동시에 거주지역 NGO 활동을 하며 취약계층과 어린이·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에 다닌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 몸과 마음 상처 심각, 국민 공분 하늘 찔러… 경찰 "끝까지 추적"
피해자들은 '일상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N번방, 박사방 등에서 신체 사진과 영상이 유포되고 성폭행까지 당하는 등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대화방에서 나가 텔레그램을 삭제, 탈퇴하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가출해 친구 집으로 피신해 봤지만 이미 수천, 수만 명에게 자신의 모습이 담긴 성착취물이 유포된 뒤였다.
N번방을 포함해 성착취물을 유통하는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2019년 초부터 수십개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교사방', '여군방', '여경방', '여간호사방', '여중생방', '여아방' 등 가해자 성적 취향에 따라 생기거나 사라졌다.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수능 갤러리 등의 남초 사이트에서도 N번방 등의 링크를 거래하거나 공유한다는 글이 올라오곤 했다.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용자들이 암호화폐로 거래했고, 위커나 텔레그램은 서버를 국외에 두고서 회사 정책에 따라 이용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탓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운영자나 이용자들도 피해자나 수사기관을 조롱하는 모습이었다.
박사방을 포함한 채팅방 이용자들은 지난해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 사건을 집중 보도한 한겨레 기자와 그 가족들 신상 정보를 털려 하는 등 협박을 시도했다.
당시 박사는 "기자 신상을 털면 10만 원 후원으로 인정해 특별한 방에 입장시켜 주겠다"거나 "여기 있는 노예를 마음대로 조종할 권한을 주겠다"고 공지했다. 이에 일부 기자가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한 바 있다.
박사는 또 일부 피해자에게 자신이 다른 인물인 척 행세하며 경찰 신고를 권유하고, "경찰서 내부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지시해 수사기관을 농락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뒤늦게 신고를 권유한 사람이 박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텔레그램 성착취 채팅방에 대한 국민 공분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선 관련 청원 4건에 동의한 국민이 500만명을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도 "(채팅방) 참여자 전원을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지난 23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텔레그램 성착취 채팅방 사건에 대해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 청장은 "텔레그램 상 성착취물 유포를 비롯한 사이버 성폭력을 '중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사이버성폭력 사범을 끝까지 추적·검거할 것"이라며 "성착취물 공유·유포 행위는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로 호기심 충족이나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인식해야 할 때다. 디지털 성범죄로 고통당하신 피해자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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