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깨졌는데도 산천은 여전하여 /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봄이 돌아오자 푸나무가 무성쿠나 /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시절을 생각함에 꽃을 봐도 눈물 왈칵 /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이별이 원통해서 새 노래도 마음 덜컥 /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봉화가 석 달 동안 줄기차게 이어지니 /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집안 소식 만금 줘도 듣기가 쉽지 않네 /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흰 머리 긁고 긁어 자꾸만 짧아지니 /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이제는 비녀마저도 도저히 못 꽂겠네 /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당나라 현종(玄宗)이 양귀비(楊貴妃)를 만나 몽환적인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이때다' 하고 안록산(安祿山)이 우지끈 들고 일어났다. 그가 지휘하는 반란군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 장안을 점령했고, 현종은 양귀비의 손을 잡고 줄행랑을 쳤다. 그 찬란하던 국제 도시 장안은 엉망진창과 풍비박산의 쑥대밭으로 돌변해버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이 돌아오자, 바로 그 폐허의 쑥대밭 속에서 온갖 꽃들이 한 바탕 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푸나무들이 시퍼렇게 자라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철대가리 없이 이렇게 봄이 불쑥 돌아온단 말인가? 이 난리 통에 꽃이 피다니? 꽃을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뭐라고? 새들이 노래를 해? 그래봤자 내 마음만 덜컥덜컥 내려앉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석 달이나 계속되고 있으니, 아아, 땅이시여, 하늘이시여!
"거리엔 벽만 우뚝 산 마슬엔 새 밭 매고/ 전쟁이야 멎건 말건 봄바람 불어들어/ 피 흘려 싸우던 들에 속잎 돋아 나온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봄에, 피난 정부의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지었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시조 '전쟁 중의 봄'이다. "지난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 죽은/ 아홉 살 아지자의 피가 말라붙은 벽돌 틈에서/ 노란 민들레는 무심히도 꽃망울을 피워 내고/ 포연 속에서도 새들은 알을 까고/ 올리브 나뭇가지에 꽃은 피어나고/ 밀밭은 푸르고 대추야자 열매는 봉긋이 오르고/ 골목에 널린 빨래는 눈부시게 펄럭인다" 미국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던 바그다드에서 지은 박노해 시인의 '바그다드의 봄'의 일부다. 모두 두보(杜甫)가 지은 위의 한시의 변주(變奏)라고 해도 좋을 게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무려 석 달 째나 계속되고 있는데도, 봄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있다. 단 두개의 마스크를 사기 위하여 긴긴 줄을 서고 있는 동안에도, 꽃들은 지랄발광하며 꽃망울들을 마구 터뜨리고 새들은 야단법석 노래를 부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봄날이다. 아아, 땅이시여, 하늘이시여!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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