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넘어서야 할 선(線), 이루어야 할 선(善)

입력 2020-03-16 18:00:00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산업디자인과 부교수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산업디자인과 부교수

3월이다. 개학 시즌이지만 난데없이 몰아닥친 코로나19 사태로 학교들이 개학을 늦춘 까닭에, 아직도 교실에서의 첫 대면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치는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내게 수업은 많은 한계를 넘어야 하는 일이다. 이제 수업은 특정 세부 영역 간의 경계선(線)을 넘나들며 융합할 수 있어야 하고, 세대가 다른 학생들을 이해해야 하는 선(善)함도 요구한다. 이것은 디자인 작업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작업은 의뢰받은 디자인 과제에 대한 최적의 해결안 도출을 위해 상품의 외관, 기능성, 경제성 등 영역 간 선(線)을 넘어서야 하고 고객의 이익은 물론 사회적 책임도 담아낼 선(善)함이 필요하다.

수업과 디자인이 선(線)을 넘고 선(善)을 갖춰야 하는 이유에는 학생, 고객, 사용자, 결국 '사람'이 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고 "한 사람의 일생이 함께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누군가'의 일생이 압축된 현재를 공유하는 것이다. 학생을, 사용자를 혹은 소비자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때, 수업도 디자인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디자인에서 '공감과 이해'의 중요성은 2012년 진행된 '생명의 다리'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 프로젝트는 한강 다리 중 투신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마포대교의 자살률 감소를 목적으로, 투신방지벽 같은 물리적 방법이 아닌 감성적 접근을 시도했다. 난간대에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시원하게 한번 얘기해봐요" 등 위로 메시지를 쓰고,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불이 들어오게 했으며, '생명의 전화'를 설치해 대화형 접근을 시도했다. 참신했다.

효과가 있었다. 'SOS 생명의 전화'가 설치된 한강 다리 5곳에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다시 삶으로 돌아간 사람은 163명으로 이 중 70%는 '생명의 다리'가 설치된 마포대교에서 전화를 걸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도 '생명의 다리' 소식은 빠르게 확산되며 자살 방지 여론도 형성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광고제들을 휩쓸며 '생명의 다리'는 성공적 디자인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얼마 후, 마포대교의 자살자 수는 다시 증가했다. 2012년 15건이었던 마포대교 자살 시도는 2013년 96건, 2014년 128건이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람들은 "수영 잘 해요?" "하하하하하하하" 등 위로의 메시지가 산책하는 사람들에겐 힐링이 되어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엄중한 현실엔 맞지 않는 가벼운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참신함에 감탄했던 내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흘러 해결안이 노출되면서 참신함을 잃은 것도 한 요인인 듯싶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막다른 길에 선 사람에 대해 전문적 조언을 할 수 있는 심리학자나 상담사 등과 밀도 있는 융합이 이루어졌다면 한계선(線)을 넘어, 누군가의 삶에 에너지를 주고,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선(善)한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수업이든 디자인이든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을 향하기 위해 결국 선(線)을 넘고 선(善)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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