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마스크가 민심이다

입력 2020-03-15 15:42:02 수정 2020-03-15 18:50:09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주말인 14일 경북 칠곡군 동명지 수변생태공원에 나들이 나온 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산책을 즐기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주말인 14일 경북 칠곡군 동명지 수변생태공원에 나들이 나온 많은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산책을 즐기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정부가 마스크 문제를 다뤄온
우왕좌왕 과정들을 보면 답답
이제 와서 천 마스크 쓰라거나
사용 줄이자는 소리는 참 민망

앞산 자락의 한 산책 길이다. 탁 트인 데다 바람도 잘 분다. 전문가의 말대로면 이런 곳에선 마스크를 안 해도 된다.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벗는 사람이 없다. 침방울이 튄다는 2미터보다 훨씬 더 뚝뚝 떨어져 걷는데도 그런다. 혹여 벗고 싶다 해도 눈치가 보일 정도다. 마스크가 그냥 마스크가 아니게 된 셈이다. 그걸 하지 않고선 외출을 못 하는 사회적 상규, 그러니까 조선 양반의 갓이나 여인의 쓰개치마처럼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대책이란 게 마스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꼭대기에서조차 쓰고 있다 한들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 마스크 수급이 고민인 정부로서야 말리고 싶겠지만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정부가 미리 더 잘했어야 할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정부를 무턱대고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코로나19가 곧 종식될 것이다'라고 전망한 대통령을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욕하고 싶지도 않다. 그땐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전망을 그렇게 한 것과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19가 잠시 숙지고 있을 때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진단 시약을 추가로 승인하는 등 상당한 대비를 해왔다.

사태 초기에 우리가 '대구의 아들'이라며 찬양해 마지않던 봉준호 감독과 대통령이 일정대로 '짜파구리' 먹은 걸 가지고 옹졸하게 물고 늘어질 생각도 없다. 이 글로벌한 세상에서 일찌감치 중국인들을 막았더라면 이리 되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 또한 그리 타당해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될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중국인 입국을 막았던 이탈리아와 지금 유럽의 상황은 설명이 안 된다. 그리고 가정이긴 하지만 정부가 진짜로 중국과의 모든 출입을 금지했더라면 방역에 별 효과도 없는 보여주기식의 조치로 경제만 망하게 했다는 비난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출생연도에 따라 요일별로 마스크 구매 가능한
출생연도에 따라 요일별로 마스크 구매 가능한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이후 첫 주말인 14일 대구 달서구 한 약국 앞에서 주중에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한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아무튼 투명한 정보 공개, 공격적인 검사, 적극적인 격리 및 치료 등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건 맞다. 미국 하원의 코로나 청문회에선 '우리는 왜 한국처럼 못하느냐?'는 의원들의 항의성 질문이 잇따랐다. 캐럴린 멀로니 정부감독개혁위원장은 '우리가 두 달 넘게 검사한 사람보다 한국의 하루 검사 인원이 더 많다'며 미 행정부의 분발을 촉구했다. 해외 언론과 각국의 전문가 그리고 정상들도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우리 국민과 정부의 놀라운 역량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마음이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마스크 문제로만 돌아오면 그런 마음은 금세 식어버린다. 지금까지 정부가 마스크 문제를 다뤄온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마스크를 중국에 갖다 바쳤다는 등의 무작한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질책이 다섯 차례나 있을 동안 바뀐 게 없었고 내일 모레쯤이면 해결될 거라던 총리의 말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하게 된 지금의 마스크 5부제는 진즉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행 첫날 서버에 과부하가 걸린 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미리 조치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노약자와 취약 계층에 대한 배려 또한 마찬가지다. 사전에 조정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천 마스크를 쓰라거나 사용을 줄이자고 하는 것도 참 민망한 일이다. 그건 정부가 국민보다 앞서 할 소리가 아니다.

국민들은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해 집 밖을 나서고 그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하루를 버틴다. 마스크가 단순히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예방적 보조 장치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약자를 위한 마스크 양보까지 국민들은 정부가 하라는 걸 다 하고 있다. 그리고 바라는 게 겨우 하루에 마스크 한 장이다. 그러니 정부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일을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다 하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 전에 마스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걸핏하면 호소만 할 게 아니라, 그리고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단호하고도 비상한 노력과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드라이브 스루'처럼 정부가 세계 각국의 칭찬을 받을진 몰라도 정작 국민의 칭찬을 받기는 어렵다. 마스크가 곧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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