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아름다운 죄가 있을까?

입력 2020-03-06 14:30:00

주홍글자(너대니얼, 곽영미 옮김, 열린책들, 2012)

화엄사 홍매
화엄사 홍매

주홍글자(너대니얼 호손, 곽영미 옮김, 열린책들, 2012)

헤스트 프린, 청교도의 엄격한 윤리가 지배하던 시대에 간통이라는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여인의 이름이다. 가슴에 간통을 뜻하는 'A' 자를 달고, 부정으로 갖게 된 딸 펄을 키우며 살아간다. 고위 인사들이 그녀를 처형대 앞에 세워두고 온갖 모욕을 주며 펄의 아버지를 밝히라고 하지만, 헤스트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군중들 속에서 지켜보는 늙은 의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펄의 아버지인 딤즈데일이다. 그는 벌을 받고 있는 여인이 헤스트라는 것을 알아보고, 헤스트도 군중 속에 있는 그를 발견한다.

헤스트 프린의 삶, 그것을 상징하는 'A' 와 펄은 소설 속에서 이렇게 묘사된다.
"그녀는 여전히 갓난애를 품에 안고 금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주홍글자 A를 가슴에 단 채 처형대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란 말인가? 그녀가 꽉 껴안는 바람에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눈을 내리 깔고서 주홍글자를 보았고 아기와 그 치욕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가락을 만져보기까지 했다."(77쪽)
형을 마친 헤스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며 꾸준히 선행을 하고,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도 좋아진다. 가슴에 단 주홍빛 글자 A 글자 장식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adultress(간통한 여인)에서 able(유능함)이나 천사인 angel로 변한다.

헤스트 프린, 그 얼마나 많고 깊은 치욕을 느끼며 살아가야 했을까. 그것을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한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어린 딸은 그의 죄가 낳은 고통의 실체이면서도 그가 겪는 모든 수모를 견디게 하는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온갖 일에 정성을 다해 살면서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그녀의 삶을 주홍글자 A 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가.

나는 그녀에게 기우는 내 마음을 써 보낸다. "숲속 여인/ 그녀는 헤스트 프린/ 그 숲속 밀애가 그토록 고통의 늪이 될 줄이야/ 뿌린 씨앗 꽃망울 아픔 되어 붉게 물드네./ 채색으로 물든 노을 춤추며 너를 불러 반기리라/ 고통 없고 아픔 없는 세상으로 너를 불러 반기리라…"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랑의 행동에는 분명 책임이 따르는 것이지만, 유혹을 뿌리지치지 못한 잘못의 대가는 참으로 엄청났다. 이 시대의 윤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성경중심의 신앙과 금욕주의, 향락을 엄격히 제한하던 청교도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하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스펜스와 버니언의 책을 탐독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 호손이 이런 시대적 가치를 비판한 것인가? 옹호한 것인가? 굳이 판단하고 싶지 않다.

다만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어떻게 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다. 그 고민이 삶을 바로 이끄는 정신이 될 수 있으니까. 살아가면서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운명 같은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와 함께 아름다운 죄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게 인간의 욕구지만, 그 꿈에 다가서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여숙이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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