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대통령의 '희망고문'

입력 2020-03-04 06:30:00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 대통령, 최기영 과기부 장관, 박재민 국방부 차관,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홍남기 경제부총리, 문 대통령, 최기영 과기부 장관, 박재민 국방부 차관,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영화 '타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화투판에서 사람 바보로 만드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희망. 그 안에 인생이 있죠. 일장춘몽." 지금은 계속 잃고 있지만 '다음 판에는 꼭 터질 거야'라는 '희망 고문'의 심리를 표현한 대사다. '희망 고문'은 한때는 가수 겸 기획자 박진영이 1999년 수필집 '미안해'에 처음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원조는 19세기 프랑스 작가 빌리에 드 릴아당의 단편소설 '희망이란 이름의 고문'이다.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힌 유대교 랍비가 탈출구를 찾아내고 마침내 탈옥에 성공했으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종교재판소 소장에게 잡히고 만다는 내용이다. 그 순간을 릴아당은 이렇게 묘사한다. "이 운명적인 저녁의 매 순간이 다 예정된 고문이었다. '희망이란 이름의 고문'."

희망 고문은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 때 포로가 돼 8년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으나 끝내 살아남은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경험은 이를 잘 말해준다.

포로수용소 동료 중 쉽게 풀려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꼭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사람은 살아남은 반면 '크리스마스 때는 풀려날 거야' '이번 부활절에는 풀려날 거야' '추수감사절에는 꼭 그럴 거야'라며 근거 없는 희망에 매달린 사람이 가장 먼저 죽었다는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막연한 희망에만 기대를 걸었다가 더 큰 실패를 초래한다'는 의미의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의 유래다.

우한 코로나 국내 확산이 통제 불능 상황인 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대(對)국민 희망 고문은 멈출 줄 모른다. 문 대통령은 2일 국군대전병원을 방문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에 비하면 투명하게 모든 정보가 국민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은 좋아진 점"이라며 "감염병 대응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했다.

행간을 읽자면 그 의미는 '우한 코로나는 곧 잡힐 것'쯤 될 듯하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굉장히 높아진 전염병 대응 수준의 논리적 귀결은 우한 코로나 퇴치일 것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지난달 13일 발언과 다르지 않다. 국민은 우한 코로나에 시달리고 대통령의 희망 고문에도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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