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스크 대란

입력 2020-03-16 15:25:02 수정 2020-03-16 18:48:19

김동식 대구시의원

김동식 대구시의원
김동식 대구시의원

마스크가 일상에 등장한 것은 변장의 목적이나 방한의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존재의 가치가 별로 없던 마스크가 대구 시민들의 생명줄이 되면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사람과의 대화 주제가 마스크로 시작해서 마스크로 끝나고, 타지에 살고 있는 친인척들은 스스럼없이 마스크를 보내주기도 하고, 손재주 있는 사람은 재봉틀을 돌려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나누기도 한다. '왜 중앙정부는 처음부터 중국인을 전면 차단하지 않았느냐?' '왜 대구시는 처음부터 신천지를 전격 조사하지 않았느냐?' 시민들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분노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결과를 가지고 과정을 비판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초기부터 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미처 닿지 못한 가정의 오류도 있을 수 있겠고 정무적 판단도 있을 수 있다. 통치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정치의 영역이 사라지고 정치의 영역이 사라지면 즉시적 대응이 힘들어진다. 통치행위의 잘잘못은 투표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일반적 원리이다.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시민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시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는 사이에 가짜 뉴스는 안방을 점령하고 마구 쏟아져 나왔다. 마스크 대란은 이 과정에서 태동하고 전파되었다. 정부에 대한 비난과 불신까지는 괜찮았는데 이 불안과 공포의 시기에 시민들이 믿을 곳을 잃게 된 것이다. 코로나19의 위험에서 나와 내 가족을 지킬 유일한 무기로 마스크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 가족은 코로나19 전염으로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마스크를 졸지에 신격화하고 말았다.

물론 마스크가 전쟁을 치르는 종족들 사이에 좀 더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된 시절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원시시대의 이야기다. 현대에 와서 전투에서 마스크를 사용한 예는 없다. 가스전을 대비해 방독면을 사용한 정도가 전부이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19와의 전투는 원시적인 싸움이다. 물론 전염병 창궐로 몇천만 명이 죽었다는 기록도 있고 공동체가 몰살당한 예도 있고 왕조가 사라진 예도 있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전염병으로 공동체 사회가 붕괴된 예는 없다. 공포의 재생산과 확산이 사회를 마비시키고 공동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다. 잘 진화된 도시의 허점을 파고든 감염병과의 힘든 싸움 과정에 마스크를 정부보다 더 신뢰하게 된 작금의 현실이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이번 마스크 대란이 끝나면 어떤 방향으로든 이 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난국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나 때문에 더 위급한 이웃이 곤경에 처하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혼자만 살아남을 재간이 없고 혼자만 전염병의 전파에서 안전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늘 재난영화에는 영웅이 등장한다. 하지만 진짜 영웅은 공동체 의식으로 뭉친 조연들이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의 환호는 조연들의 몫이다. 하지만 재난영화를 보면 혼자 살겠다는 욕심으로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등장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어떤 배역을 맡을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이고, 얼마나 열연할지 또한 전적으로 출연진인 우리 시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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