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한시산책] 문을 걸어 연을 끊고 - 박의중

입력 2020-03-06 14:30:00

쓰잘 데 없는 사람 문을 걸어 연을 끊고 / 杜門終不接庸流(두문종불접용류)

내 누각에 푸른 산만 드는 것을 허락하네 / 只許靑山入我樓(지허청산입아루)

즐거우면 시를 읊고 안 내키면 잠을 자고 / 樂便吟哦慵便睡(낙변음아용변수)

그 밖에 다른 일엔 나 아랑곳 하지 않네 / 更無他事到心頭(갱무타사도심두)

* 원제: 次金若齋九容(차김약재구용: 惕若齋(척약재) 金九容(김구용)의 시에 次韻(차운)함)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국민들이 공포에 벌벌 떨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자가 격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기에, 강정마을의 내 작업실에다 자진하여 스스로를 유폐시킨 지도 어언 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가족들과도 가급적 접촉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우리 집에도 거의 발걸음을 끊고 있다. 다들 '방콕' 신세를 못 면하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하겠다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이 답답하고 짜증스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정말 중요하다. 옳거니, 이때야말로 긴요하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복잡한 인간관계를 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자연스런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 그러고 보면 내가 유유자적하게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때야말로 창문을 열고 저 비슬산의 장쾌한 스카이라인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대화를 나누어 볼 수도 있겠네. 도대체 내가 시를 읽은 것이 언제였던가. 꼭 시가 아니더라도 내가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것이 도대체 언제적 일이었던가. 옳거니, 이때야말로 하루에 한 권씩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고, 내가 내 몸을 얼마나 심하게 혹사했던가. 그래 맞다, 이때야말로 자고 싶으면 더러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내 몸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도 있겠네.

옳거니, 이때야말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여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준비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네. 이리저리 쏘다니면서 바이러스 감염을 부추기지 말고, 내 삶 전체를 조용히 돌아보며 응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궐하고 있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분들을 조금이나마 도우는 일이 되기도 하고.

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일 뿐이라니, 의사가 되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고도 안타깝네, 아아!

이종문 시인
이종문 시인

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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