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루모스 윤길중 작품집 출간 기념전 'Human Desire'전

입력 2020-03-01 06:30:00

윤길중 작
윤길중 작 'stone totem pole 03'

사진 프레임 속 배경은 없다. 다만 짙은 회색빛 한지에 사람들의 표정이 도드라질 뿐이다. 그 '사람'도 돌로 빚은 얼굴인데 세월의 풍상을 한껏 머금은 돌을 보면 누구의 얼굴인지,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사진가 윤길중의 작업 '석인상'과 '석장승'은 아주 오래전 그때의 시간과 공간 속을 헤집고 들어가 교감을 해보라며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는 5년간 800여곳을 찾아다니며 우리 선조들의 욕망과 애환이 담긴 석인상, 석장승을 렌즈에 담아낸 작가 윤길중의 작품집 출간 기념전 'Human Desire'전을 열고 있다.

이 전시는 루모스와 일본 아카아카가 공동으로 작품집을 출간, 이를 기념한 행사로 1천700여장 가까운 사진을 찍으며 작가가 얻은 답이 '인간적 욕망'(Human Desire)임을 드러내고 있다.

윤길중은 석인과 석장승을 단순히 사료적 목적에서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사진을 인화지가 아닌 전통한지로 표현했다. 모노톤 위의 한지에 자연스레 서있는 돌사람들은 오랜 세월 꿋꿋하게 버텨온 굳센 의시와 더불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40장의 석인상과 30장의 석장승을 담은 작품집 'Human Desire'는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와 일본 아카아카가 공동 출간했으며 모두 1천200부를 발행했다.

"선조들은 돌을 조각해 그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왜 그들을 기원의 대상으로 삼았던 걸까요? 아카이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조각상들의 표정과 형태와 세워진 장소를 통해 선조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조명해 보기 위한 목적이죠."

작가에 따르면,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한 석인상은 몸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얼굴 표정에 집중해 조각했지만 지그시 감은 눈에서 망자(亡者)에 대한 절실한 염원이 느껴졌고 굳게 다문 입에선 간절함이 배어났으며, 마을 어귀나 사찰입구에 세워져 액운을 막기 위한 장승은 민중들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특히 장승의 부릅뜬 퉁방울 눈, 분노에 벌름거리는 펑퍼짐한 코,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재미난 입을 한 정겨운 얼굴들은 애환과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민중의 자화상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돌사람의 표정에 매료된 윤길중의 시선은 대상이 가진 질서와 논리에도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는 무덤 곁에서 망자를 수호하는 석인상이 무한히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품고 있다고 해석했다. 석인상의 의미를 '수호'에서 '영원을 향한 욕망'으로 확장시킬 때 작가의 사진은 기록물의 차원을 넘어 미학적'인문학적 가치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또한 석장승은 소외된 민초들이 스스로를 수호하고자 세운 토속신앙의 표식이 된다. 윤길중은 장승의 표정을 읽기에 방해가 될 배경을 없애고 얼굴만을 부각시켰는데, 이 작업은 돌이 지닌 오묘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외발 뜨기 한지에 프린트를 하고 살아 숨 쉬는 종이에 화학적 손길을 가할 수 없어 자연의 옻칠과 약재로 코팅을 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우리에게 보여주는 윤길중의 작품들은 전통과 인문학적 재해석, 예술적 가치를 두루 갖추고 있으며 선조들의 '염원' 내지는 인간적 '욕망'의 지평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윤길중의 사진집 'Human Desire'는 '2019 파리 포토'의 포토북 페어인 'Poly Copies'에 처음 소개됐다. 전시는 4월 19일(일)까지. 문의 010-9995-9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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