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한 독립운동가 문영박 선생

입력 2020-03-02 18:00:00

상하이 임시정부에 11년간 자금 후원 '광복의 숨은 영웅'

수봉 선생 증손자 문승기 씨가 추조문과 특발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재수 기자
수봉 선생 증손자 문승기 씨가 추조문과 특발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재수 기자

일제강점기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방법은 다양했다. 온몸을 던져 일본과 싸운 투사도 있고, 독립운동 조직이나 단체가 원활하게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소리 소문 없이 자금을 댄 운동가도 많다. 남평문씨 세거지(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의 수봉(壽峰) 문영박(文永撲,1880~1930) 선생은 임시정부에 자금을 댄 독립운동가였다. 수봉 선생이 타계하자 상하이 임시정부는 사람을 보내 추조문와 특발문을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감사함을 전했다. 그 문서는 그가 타계하고 32년 뒤에 발견돼 최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문명박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수봉 문영박 초상화
수봉 문영박 초상화

◆남평문씨세거지의 독립지사 문영박

지역의 선비이자 부호였던 수봉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전국 각지를 왕래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군자금을 보냈다. 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자금을 임시정부 요원을 통해 보내기도 하고, 중국으로부터 책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임시정부에 대한 자금 후원은 일제를 크게 자극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수봉 선생은 1927년 2월 가택 수색을 당하고 장남 원만(元萬)과 체포돼 28일 동안 대구경찰서에 구금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경은 분명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수봉 선생을 석방했다. 수봉 선생의 자금 후원은 1930년 12월 타계할 때까지 계속됐다. 수봉 선생의 증손자 문승기(84) 씨는 "할머니는 물론 아들, 주위 사람들까지 아무도 모르게 전달했다"며 "할아버지가 중국 상하이를 통해 청나라 책을 집중적으로 사 모은 것도 아마 군자금을 상하이로 전달하려는 방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봉 선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상하이임시정부는 추조문(追弔文, 추모하고 조문하는 글)과 특발문(特發文, 특별히 보내는 글)을 상가로 부쳤다. 하지만 문서를 품고 국내로 잠입한 요원이 일제의 삼엄한 경계 탓에 수봉 선생의 후손들을 만날 수 없었다.

수봉 선생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명한 추조문.
수봉 선생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명한 추조문.

이와 같은 사실은 추조문과 특발문이 발견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1963년 경남 창원의 독립운동가 이교재(1887~1933)의 집. 후손들이 집수리를 위해 천장을 뜯어내자 빛바랜 문서가 여러 개 발견됐다. 문서는 1931년 10월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작성한 여러 점의 독립운동 관련 문서였다. 그 속에 임시정부가 수봉 선생의 타계에 대한 추조문과 특발문도 들어 있었다. 당시 경상남북도 대표였던 이교재는 1930년 12월 수봉 선생이 타계하자 1931년 임시정부로부터 추조문과 특발문을 수봉 선생 가족에게 전해주라는 특명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지만 일경의 감시가 심해 전해주지 못하고 집에 보관하고 있다가 체포돼 1933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 32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집수리를 하는 과정에서 문서가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수봉 선생 유족에게 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요청한 내용을 담고 있는 특발문.
수봉 선생 유족에게 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요청한 내용을 담고 있는 특발문.

◆추모 관련 문서 지역 최초 문화재

추조문은 분홍빛이 감도는 비단에 16× 20.8cm, 특발문은 22.3× 18.7cm 크기로 제작됐다. 추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봉 선생의 유족에게 조의를 표명한 문서이고, 특발은 수봉 선생의 아들인 원만(元萬)에게 활동을 위한 지원금을 요청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추조문에는 수봉 선생에 대해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이란 극존칭을 사용했다 이 말은 '대한국 역사의 주인이 되는 어른'이란 뜻이다.

추조문과 함께 수봉 선생의 아들 원만에게 보내온 특발문 내용은 당시 임시정부이 궁핍한 사정과 주변 증세에 대한 기대감, 광복을 위한 의지를 엿볼 수 있으며, 임시정부 활동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한 절박한 심정과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문승기 씨는 "당시 임시정부는 우리 집안을 믿고 의지할 곳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말했다.

경북독립운동 기념관 김희곤 관장은 "당시 임시정부는 조직이나 자금이 아주 열악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상당한 금액의 군자금을 보내주는 분의 타계에 대한 애도 표시와 함께 앞으로도 자금을 계속 부탁한다는 특별한 당부도 필요했을 것"이라면서 "두 문건은 당시 임시정부가 필요한 상비금을 어떻게 마련하였는지, 또 국내의 유지와는 어떻게 접선하였는지를 살필 수 있어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수봉 선생에게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문영박 추조 및 문원만 특발' 등 2건의 항일유산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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