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어우러짐

입력 2020-02-25 14:22:04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뉴욕 우드사이드 역에서 타임스퀘어로 가는 7트레인을 타면 창 밖으로 근사한 맨해튼을 구경할 수 있다. 짧게나마 바라볼 수 있는 이 압도적인 빌딩 숲 풍경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청년은 42가에서 노란색 기차로 환승한 뒤 8가 NYU 역에 내려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으로 향했다.

온 사방에 보라색 교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춤추는 깃발에 실려 날아온 할랄푸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뉴욕에 오면 쉐이크쉑 버거 다음으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별미다운 냄새다. 평화로운 로우타운을 걷다 보니 어느새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웅장한 워싱턴 스퀘어 아치에 다다랐다.

학교 캠퍼스인 워싱턴 스퀘어 파크는 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학교-집이 대부분 삶이었던 유학생 청년은 평화롭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학교 캠퍼스를 한눈에 담는다. 치열했던 이곳의 삶도 떠나고 나면 분명히 그리워 질 것이었다. 멀리서 청년을 알아본 프레드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와 청년 옆에 앉는다.

"왜 이리 빨리 떠나는 거야? 이제 막 뉴욕에 입성한 신입 작곡가가 된 셈인데 더 머무르지 않고?"

교수님의 질문에 청년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연다.

"배움이 끝났으니 고향으로 가서 시작해야죠."

귀국하면 바로 뮤지컬 한편을 만들 작정으로 이미 소재를 찾아 뼈대를 만들어 둔 터이다. 구체적인 스토리 라인과 음악적 색깔을 설계해 두었다는 씩씩한 제자의 말에 교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여전히 아쉬운 표정을 짓자 청년이 한마디 더 거든다.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 토니어워즈에 참가하게 되면 그때 다시 봬요"

청년의 실없는 농담에 박장대소를 하던 프레드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 청년의 손등에 손을 올린다.

"작곡과 작사는 뮤지컬에서 뼈대를 만드는 아주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걸 실현하는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악보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지. 또 아무리 좋은 배우와 오케스트라가 있다 한들 무대와 조명이 없다고 생각해 보게."

청년은 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뮤지컬은 하모니일세. 절대 혼자 만들수 없는 예술이지. 어우러짐의 시작은 배려(Consideration) 임을 잊지 말게."

늘 철학적인 대답으로 스스로 생각하길 바랬던 프레드식 인사법. 청년은 그게 프레드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레드가 긴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 쪽으로 분수대의 물이 쏟아지고 있다. 물줄기는 햇빛과 어우러져 무지개를 만들어 장관을 이룬다. 청년은 뉴욕에서의 모든 경험과 배움에서 얻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JFK 공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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