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염병의 창궐은 국가와 민족의 생사와 존망이 걸린 엄중한 위기 상황이었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전염병의 파괴력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그 이상이었다. 전란이 그칠 날이 없던 왕조 교체의 혼란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송·명·청대의 태평 시기에도 수시로 전염병이 나돌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곤 했다. 대륙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때만 해도 모두 80건에 이르는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했다.
의료 기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역대 왕조들이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서 취한 최선의 수단은 다름 아닌 전염원의 차단이었다. 철저한 격리조치와 나름의 위생방역이 뒤따랐다. 국가 경제와 의료 역량을 동원하는 것도 오늘날과 비슷하다. 각종 역병과 역질이 유행했던 조선시대의 양상도 다를 바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에 대한 대응의 성패는 정권의 흥망을 좌우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인류 문명을 강타한 가장 무시무시한 전염병은 흑사병(페스트)이었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가버린 공포와 죽음의 사신이었다. 전쟁이 전염병을 몰고 왔지만, 전염병의 공포가 전쟁의 참화를 막기도 했다. 몽골군은 스스로 몰고 온 흑사병 때문에 막바지 유럽 정벌이 좌절되었지만, 유럽은 몽골의 말발굽보다 더 혹독한 흑사병 쓰나미에 무너져내렸다.
흑사병은 당시 유럽의 크고 작은 전쟁을 종식시키며 인간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전염병 창궐에 무기력했던 중세 교회의 권위를 뒤흔들며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민족의 개념이 싹트고 인간 중심의 사상이 출현했다. 노동력 부족이 임금 상승과 농민 폭동으로 이어지며 사회경제적 변화를 가져왔다.
전염병은 치명적인 재앙이지만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일신하며 인류 문명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인간 사회의 경이로운 의학적 성과와 보건 위생의 향상에도 신종 전염병은 이를 비웃듯이 한발 앞서 횡포를 부린다. 중국 우한에서 비롯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공포와 파동이 중국 공산당 정권의 행보에 어떤 악재로 작용할까. 그리고 21세기 세계 문명에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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