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7 vs 3

입력 2020-02-19 10:30:15 수정 2020-02-19 15:13:04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오래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비엔나에 유학을 갔을 때 그곳에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던 우리 교민들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때 친해진 한 가정의 초등학생이던 꼬마 소녀가 성실하고 예쁘게 자라더니 마침내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그녀는 날마다 해야 하는 수많은 진료들을 큰 탈 없이 잘 수행해 나갔다.

그녀를 눈여겨본 같은 병원 비엔나 태생의 한 동료가 사랑을 고백했고 마침내 나에게 혼인 주례를 부탁해 왔다. 혼인 후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앉아 맛있는 식사와 더불어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솔직하게 평가해 본다면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서 하는 것은 3할 정도에 지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 7할이나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계속해서 출근하게 된다고 했다.

그가 그런 고백을 하는 동안 나는 묵묵히 듣기만 했지 그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와 그가 하는 의료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내가 성직자로서 살아가는 세계에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오자 그중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집도 짓고 농사도 지으며 때로는 사냥도 하고 아이도 가르치는 전인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원시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고, 20세기 중반에 태어난 나에게 그런 삶은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와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고려와 고심 끝에 자기희생을 통해 이웃 사랑을 많이 할 수 있는 길로 생각된 것을 선택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고 생각했던 이 길도 막상 들어와 보니 사람들이 모여서 살던 길이고 사람인 나를 받아들인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구성원 모두 안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있지만 천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다른 길과 마찬가지로 안정된 의식주가 필요하고 학비가 필요하며 각종 여비마저 필요한 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고 공부를 마친 후에도 누군가가 생산하고 벌어 놓은 재화를 나누어 주기를 바라야 하는 상태가 지속되어 답답하기까지 했다.

성당, 교회, 절 등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일반 신도들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단체와 봉사는 분리할 수 없는 이미지로 묶여 있다. 이러한 종교단체의 일에 전적으로 투신한 성직자와 수행자들은 이웃 사랑과 봉사를 일반 신도들보다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실천한다. 좀 더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좀 더 많이 봉사하려는 의지로 살아가지만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에 드는 수고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날마다 경험한다.

종교단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종합하여 정리해 본다면 앞에서 언급한 자신을 위한 분량이 7할이고 진정한 봉사가 3할이라는 의사의 삶과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결과가 어떠하든 안정된 의식주가 필요한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서로의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함께 하는 것만이 평화의 길이겠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