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는 훌륭하다’ 의인화에서 진정한 공존으로
동물소재 프로그램은 늘 시청자들에게 인기있는 스테디셀러 콘텐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물소재 프로그램이 새로운 진화를 하고 있다. 반려동물 가족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디셀러, 동물 소재 프로그램
사실 동물 소재 프로그램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스테디셀러로 인기있는 콘텐츠다. '동물의 왕국',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 형식의 동물 프로그램들은 지금도 방영되고 있을 정도. 동물 프로그램에서 확실한 이정표를 남긴 프로그램은 "우- 아-" 하는 시그널로 시작하던 "짝짓기를 합니다"로 유명했던 KBS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다. 1984년부터 시작해서 2004년에 종영한 이 장수프로그램이 흥미로웠던 건 그냥 동물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동물의 입장에 감정이입해 성우가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재미를 위해 넣은 작은 변화였지만 이 내레이션은 동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저 관찰하던 데서 동물에 감정이입하게 함으로써 동물과 시청자 사이를 밀착시켜줬기 때문이다.

SBS 'TV 동물농장'은 바로 이 감정이입을 통해 등장하는 동물의 입장을 공감하는 관점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떠나버린 주인을 그 자리에서 계속 지키며 기다리는 개의 이야기나, 죽은 어미를 대신해 어미 역할을 해주는 고양이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에둘러 반추하게 만들었다. 반려동물은 이제 그냥 키우고 사육하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는 가족 같은 존재로 비춰졌다. 이것은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달라진 관점을 반영했다. 한 때 '애완견'이라 불렸던 것이 이제는 '반려견'으로 바뀌었다는 건 단적인 사례다. 그저 보고 즐기기 위해 기리는 동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동물의 의미가 거기에는 담겨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1, 2인 가구가 급증하고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반려동물가족 인구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이른바 반려동물가족 1천만 시대를 훌쩍 넘어서면서 반려동물 콘텐츠들은 막연히 시청하게 되는 '저들의 이야기'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함께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반려동물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해야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KBS '개는 훌륭하다'는 바로 이 변화된 시대에 맞게 진화한 동물소재 프로그램의 단적인 사례다.

◆'반려동물계의 백종원'으로 등장한 강형욱
이른바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은 반려동물가족 인구가 급증하면서 조금씩 그 존재감을 알려왔던 동물조련사이자 전문치료사다. 그는 2007년 '황금어장' 출연을 시작으로 2015년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로 인기를 끌었고, 최근에는 KBS '개는 훌륭하다'로 '반려동물계의 백종원'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런 수식어를 얻게 된 건 '개는 훌륭하다'에 등장하는 반려동물가족의 갖가지 문제들을 마치 '골목식당'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백종원처럼 강형욱이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개는 훌륭하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솔루션은 역대급으로 사나웠고 통제 자체가 되지 않던 진돗개 세 마리를 본인이 직접 그 서열 싸움에 뛰어들어 고분고분하게 만들어냈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사실상 진돗개들이 그 집안에 주인보다 높은 서열을 갖고 있다는 걸 간파한 강형욱은 마치 자신이 반려견 자체가 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가장 높은 서열을 자신이 가져왔고 그렇게 다른 개들도 하나하나 굴복시킨 후 그 서열을 그 집 주인에게 넘겨주는 놀라운 조련의 마법을 보여줬다.
강형욱의 솔루션이 독특한 건 늘 그러하듯이 반려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그렇게 생긴 문제의 원인이 사실은 견주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강형욱의 솔루션은 반려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견주의 습관과 행동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실제로 놀랍게도 견주가 지금껏 해왔던 어떤 행동들을 변화시키자 반려견들 또한 변화한다는 걸 보여준다.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잘못된 관점
그 솔루션들 중에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이해되지만 반려견들의 관점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마치 '식구'처럼 키웠지만 그래서 더 예민해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습관이 들어버린 반려견의 사례나, 파양된 유기견들을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둘 데려다 키우다보니 정작 오래도록 함께 지냈던 반려견이 그렇게 온 강아지를 집중 공격했던 사례가 그렇다. 즉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 애정이 많아 반려견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나눠주고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주는 행동은 그럴 수 있다 여겨질지 모르지만, 반려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습관은 그 개의 수명을 심각하게 단축시킬 수 있는 행위였다. 또 파양된 유기견들을 여러 마리 데려오는 건 견주가 가진 따뜻한 마음 때문이지만, 그것이 정작 본래 집에 있던 개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를 주고 그래서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것도 인간의 관점과 반려견의 관점이 그만큼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개는 훌륭하다'는 그래서 단순히 인간의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의인화'만으로는 더 이상 한 집에서 공존해야 하는 '반려의 삶'이 어려워진 시대를 보여준다. 그저 한 걸음 떨어져서 봤을 때는 그 '의인화'가 어떤 휴머니즘의 스토리를 만들어주었지만, 이제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은 그것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도모해야 하는 존재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결국 우리의 생존과도 연결되어 있다. 즉 동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인간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물소재 프로그램들이 일방적인 관찰이나 단순한 의인화가 아닌 진정한 소통을 통한 '공존'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제 저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히 어떤 행동을 우리 식으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것은 '소통 부재'가 만드는 문제들을 야기한다. 강형욱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개는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 다만 그 개와 함께 하는 우리들이 부족할 뿐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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