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1917…1차대전 참상에서 건져올린 젊은 병사의 희생담

입력 2020-02-13 14:30:00

영화
영화 '1917' 스틸컷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는 유럽을 관통하는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치러졌다.

근대화로 인해 신형 병기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전투의 대부분은 병사들의 맨투맨 전투로 이뤄졌고, 그래서 그 참혹함은 2차 세계대전을 능가했다. 19세기 '품위'(?)를 유지했던 전투는 사라지고, 징병된 젊은 병사들의 희생만 시체처럼 쌓여갔던 비정한 전쟁이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력한 작품상 후보였던 '1917'(감독 샘 멘데스)은 그 전쟁의 막바지인 1917년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영국군을 구출하기 위해 적진에 뛰어든 두 젊은 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독일군에 의해 통신선이 절단된 상황에서 두 병사가 장군의 부름을 받는다. 영국군 8대대 소속 일병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들은 에린 무어(콜린 퍼스) 장군에게 호출돼 특수임무를 맡는다.

영국군 2대대의 매켄지(베네딕트 컴버패치) 중령에게 공격 중지를 알려야 하는 임무다. 독일군의 퇴각이 습격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블레이크의 형을 비롯한 1천600명 병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두 병사는 '무인지대'를 넘어 목숨을 건 전진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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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스틸컷

'무인지대'(No Man's Land)는 서부전선 최악의 전투 지역이자 1차 대전의 무의미한 소모전을 상징하는 곳이다. 적군과 아군을 사이에 둔 폭 300미터의 대치 지점이다. 철조망과 지뢰로 덮여 있고, 시체들이 썩어가는 진흙 구덩이였다. 시체를 밟고 진격하다 포탄이라도 떨어지면 시체의 살점과 뼈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이었다.

금방이라도 총탄과 포탄이 떨어질 지도 모를 그 곳을 지나 아군에게 밀서를 전달해야 하는 두 병사의 죽음의 여정이 '1917'이 전하는 이야기다.

'아메리칸 뷰티'(1999)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던 샘 멘데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1차 세계대전은 '매력 없는'(?) 전쟁이다. 영웅도 없고, 명분도 없고, 승리도 없이 오로지 죽음 밖에 없는, 그래서 1차 대전을 그린 영화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샘 멘데스는 1차 대전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두 병사의 이야기를 건져 올렸다. 조부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자료조사에 들어갔다. 1917년 독일군이 힌덴부르크 전선까지 퇴각했을 무렵, 독일군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영국군의 상황을 포착해 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죽음의 골짜기로 젊은이들을 내 몬 제국주의의 비정함과 허망함을 스크린 뒤에 배치하고 아군을 살리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견뎌내는 젊은 병사의 희생과 의지를 표면에 앉혔다.

두 병사는 장군의 명령을 어기거나 포기할 수도 있었다. 형의 목숨까지 달려 있는 블레이크와 달리 스코필드는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임무였다. "왜 나를 선택했냐?"고 블레이크를 원망한다. 그러나 사투가 이어지면서 그는 서서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에 온 몸을 바친다.

감독은 그런 병사의 인간적인 내면을 아름다운 서정성으로 그려내고 있다. 들판에 핀 노란 꽃에서 시작된 영화는 조명탄에 비친 폐허의 그림자까지 아름답게 담아냈다. 벚꽃이 떨어지는 냇가와 이름 모를 병사가 부르는 노래, 갓난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등 전쟁터 한가운데이기에 더욱 간절한 잔상들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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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스틸컷

이를 위해 감독은 촬영에 획기적인 영상문법을 시도한다. 영화 전체가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원 컨티뉴어스 숏'(한 컷의 연속촬영 장면처럼 만든 촬영 기법)을 통해 미학적 가치를 높인 것이다.

카메라는 두 병사를 따라 참호와 무인지대의 진창, 온갖 시체가 널린 전장과 들판을 뛴다. 관객들은 러닝타임 내내 두 사람과 함께 달리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되고. 1인칭 시점이기에 관객은 더욱 둘이 처한 상황을 처절하게 목도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007 스카이폴' 등 수많은 작품의 촬영을 맡은 명장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도전정신이 이뤄낸 성과다. 이를 위해 핸드 헬드, 스테디 캠, 모터 사이클, 드론, 미니 카, 케이블 캠 등 모든 장치들을 동원해 경이로운 촬영을 이뤄냈다.

'원 테이크' 촬영 기법과는 달리 장면을 나누어 찍고 이를 다시 이어 붙여 한 장면으로 보이게 하는 마술을 선보인 것이다. 복잡한 동선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례적으로 4개월간의 리허설이 진행되기도 했다.

'1917'은 기술적, 미학적 성취가 뛰어난 전쟁영화다. 샘 멘데스의 작가주의적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골든 글로브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0개 부문에 후보에 올랐다.

'1917'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에서 건져 올린 아름다운 전쟁영화다.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 예정.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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